선택의 시대, 반반이 주는 위로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법

by 언덕파

요즘 들어 부쩍 ‘결정 피로’라는 말을 실감한다. 점심 메뉴 하나를 고르는 일조차 간단치 않다.

짜장면을 먹자니 짬뽕이 떠오르고, 매운 게 당기지만 속이 쓰릴까 걱정이 된다. 이럴 땐 결국, 늘 그 이름을 부른다. “반반으로 주세요.”

요즘의 나는, 반반이 좋다. 완벽한 하나보다, 조금씩 담긴 둘이 좋다. 확신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반반은 마치 나의 오늘을 닮은 선택이다. 불금 저녁 샤부샤부 집에 갔다. 매운 육수와 순한 육수를 나눠 담은 냄비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하나의 냄비인데, 두 가지 온도가 공존한다. 그릇을 사이에 두고 붉은 국물과 맑은 국물이 나란히 끓는다. 그 모습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저건 나 같다.’

요즘의 나는 늘 두 가지 마음으로 산다. 도전하고 싶은 나와 쉬고 싶은 나. 뜨겁게 끓는 쪽과 조용히 식히는 쪽이 함께 있다. 반반 냄비는 그저 요리가 아닌, 내면의 풍경 같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하나’를 고르도록 훈련받았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문과냐, 이과냐. 서울이냐, 부산이냐. 인생은 늘 갈림길의 연속이었고, 양쪽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선택은 점점 더 피로해진다. 무언가를 고른다는 건, 동시에 무언가를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모두가 조금씩 타협하고, 덜 완벽하지만 덜 후회하는 선택을 한다. 반반은 그런 시대의 상징이다. 완벽한 결정보다는 조금의 여유, 조금의 유보를 택하는 선택. 이제는 ‘모호함’을 견디는 것이 용기가 된 시대다.


짜장과 짬뽕을 한 그릇에 담은 짬짜면,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 매운 국물과 순한 국물이 공존하는 샤부샤부 냄비, 이런 반반의 메뉴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건 ‘결정 장애’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균형감각이 깃든 선택의 지혜다. 확신보다는 유연함, 단호함보다 관용을 택하는 태도다. 어쩌면 반반은, 우리가 더 이상 극단에 서지 않고 중간 어딘가에서 ‘나답게’ 서기 위한 새로운 생존 방식인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반반’의 위로를 느꼈던 건, 회사 근처 치킨집이었다. 매운 양념이 먹고 싶었지만 속이 불편했고, 그렇다고 후라이드만 시키자니 허전했다. 그래서 반반 치킨을 주문했다. 먹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맛의 조합이 아니라, 나의 상태를 솔직히 인정한 선택이었다.

“나는 오늘 완벽하지 않아.

그래서 반반으로도 충분해.”

그건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담은 주문 같았다.


우리는 자주 ‘확실함’을 미덕이라 배운다. 하나를 선택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를 용기라 부른다.

하지만 요즘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든 선택에는 사정이 있고, 모든 결정엔 망설임이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호함을 견디는 것도 용기다. 반반은 그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반반의 미학은 삶에도 통한다. 완벽한 행복은 없지만, 작은 기쁨을 나누어 담으면 하루가 훨씬 따뜻해진다. 하루의 절반은 일로, 나머지 절반은 나를 위해 쓴다면 그건 꽤 괜찮은 하루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욕심이지.”

하지만 나는 안다. 욕심이 아니라, 조화다. 일과 휴식, 열정과 여유, 매운맛과 순한 맛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완성된다. 살다 보면,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많다. 기쁘면서 슬프고, 설레면서 불안하고, 고맙지만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스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샤부샤부 냄비를 떠올린다.

뜨거움과 맑음, 매움과 순함이 나란히 끓는 냄비. 그 안에는 지금의 내가 있다.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망설이지만 그 모든 온도가 공존하기에 내 삶은 조금 더 풍성하다. ‘하나만 고르는 것’보다 ‘조금씩 담는 것’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 나는 반반을 좋아한다. 그건 유약함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방식이다. 세상이 자꾸만 선택을 재촉할수록, 나는 반반으로 숨을 고른다. 뜨겁게 끓고, 천천히 식히며 내 안의 두 세계를 함께 끌어안는다. 완벽한 답이 없는 세상에서, 반반은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위로다. 뜨거운 국물 한 입, 순한 국물 한 입. 그 사이에 담긴 건 균형감각이자 자존감이다. 오늘도 나는 반반을 고른다. 선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둘 다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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