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출산 2주 후 유방암 3기 진단과 함께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태어날 때 잠깐 봤던 우리 둘째는 2주 입원 후 퇴원을
했고 나는 며칠 뒤 상피내암 수술을 위해 온갖 검사를
받았다.
유방초음파, 유방촬영술, 유방 mri, 골다공증 검사
ct, 뼈 스캔.. 몇 가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충격 때문인지 그때의 일이
잘 기억에 나질 않는다.
유방초음파를 할 때 겨드랑이가 부었다고 세침 검사를
했었다. 굵은 바늘이 아니라서 마취 없이 진행했는데
겨드랑이를 이리저리 찔러대서 너무 무서웠다.
이 모든 게 다 잠깐일 뿐이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은 일어날 수가 없어.
머릿속으로 긍정회로만 돌리면서
얼른 수술해서 이 기분 나쁜 혹을 떼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수술하면 당분간 맘껏 안아주지도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은 감춘 채로 며칠 동안 실컷 둘째를
안아보고 살도 비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과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다.
사이즈가 5센티 이상이고 림프전이가 있어서
상피내암이 아니라 3기야.
암 타입은 허투양성이고.
원래 내일 입원해서 모레 수술하려고 했는데
상피내암이 아니라서 입원해서 몸에 케모포트 심고
항암부터 빨리 시작해야 돼.
아.. 이게 뭐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꿈인가?.. 드라마인가?.. 지금 현실인거지??
상피내암이 아니라 3기라고 들었던 순간
아.. 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집에 이제 3주 된 아기랑 네 돌로 안 지난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뭐? 항암? TV에서 보던 머리 다 빠진다는.. 그 항암??
하... 이제 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겠구나.
결코 예전으로 못 돌아가는구나.
온갖 생각에 눈물이 얼굴과 마스크를 다 덮어버렸다.
그렇게 어린애처럼 엉엉 울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치료 잘 받으면 살 수 있어요?
우리 애들 성인 될 때까지 옆에 있어줄 수 있어요?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아 이후 치료계획조차
들을 수가 없어서 부축을 받고 일단 진료실을 나왔다.
모든 게 북받쳐 올라 복도가 떠나가라 울었던 것 같다.
나 크게 잘못하고 산거 없는데.
나한테 왜 이래?? 이렇게 갑자기 나쁜 일이 다 몰려올
수 있는 거야? 왜 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오빠.. 나 이제 어떡해..
신랑을 붙들고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눈앞에 치료를 받고 있는
환우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니를 쓰고 또 가발을 쓰고 한 손엔 입원짐을 들고
항암치료를 위해 대기 중인 환자들이었다.
아.. 이게 내 현실이구나. 진짜구나.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치료 계획을 들었다.
내일 입원을 하고 다음날 쇄골아래에 케모포트를 심고
바로 항암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선항암 6번-수술-후항암 12번-방사선까지.
1년이 넘을 거라고.. 긴 치료가 될 거라고 하셨다.
아.. 올해는 끝났구나.
내 인생에 2022년은 이렇게 지나가버리겠구나.
처음에 상피내암으로 진단을 받았을 땐
수술만 하면 낫는 거야.. 라던 사람들이
상피내암이 아니라 유방암이라는 말을 듣고는
요새 유방암은 암도 아니래.
수술하고 치료받으면 괜찮다더라.. 다들 잘 살더라..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겠지만 처음엔 참 듣기 싫었던
말들.
유방암 안 걸려봤잖아.. 항암 안 받아봤으면서.
그런 말하지 마.
진단받고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라
모든 말들이 힘들었던 때였다.
유방암에는 몇 가지 타입이 있다
나는 허투 양성, 호르몬음성이라고 한다
내 암덩어리들은 허투라는 수용체가 과발현 돼서
암이 된 거란다.
90년대 후반에 표적항암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진
예후가 정말 안 좋았다고 한다.
허투 양성인 암들을 찾아서 죽이는 표적항암제.
아. 표적항암이 없었다면 난 정말 죽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방암 환자 10명 중 2-3명 정도가 허투 양성이라고
한다.. 30대에 암환자가 될 확률도 낮은데 게다가
그중에서도 겨우 2-3명 안에 내가 속해있다니.
당장 다음날 입원해야 해서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집에 가서 우리 아들들 안아줘야지.
젖 한번 못 물린 우리 둘째.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라는 우리 첫째.
우리 아들들 생각하면 더 이상 울고 있을 수가 없다.
집에서 입원 짐을 다 싸고 애들도 재우고
신랑은 내일 보호자로 같이 들어가야 해서 미리 일하고
오느라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조용한 밤이 찾아오고 친정엄마와 침대에 누웠다.
엄마가 이리 와보라고 손을 벌린다.
아기처럼 엄마품에 쏙 들어가서 꽉 안았다.
안기자마자 숨죽여 울었다.
나 어릴 때 병원도 거의 안 가고 이렇게 건강하게 잘
키워줬는데 다 커서는 내 몸 하나 못 챙기고 이렇게
큰 불효를 저질러서 미안해 엄마.
엄마도 운다.
애들은 엄마가 잘 돌볼 테니까 너 몸만 생각해.
엄마는 너 없음 못 살아.
나쁜 생각하지 말고 오늘까지만 울고,
치료만 잘 받고 와.
엄마 엄마엄마.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
너무 많이 미안해.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나에겐 엄마손이 필요한 아직 어린 두 아들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왜 하필 나냐고 더 이상 원망하는 말은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만 생각하자.. 아이들만.
두 아들들을 위해 이겨내야 한다.
난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