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팅힐 Dec 04. 2024

버텨냈다..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친정엄마가 곁에 없었다면 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tchp 1차 항암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누워있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달도 안 된 신생아가 꼬물거리고 있는데..
게다가 친정엄마가 첫째 손주 챙기랴.
갓난쟁이 둘째 손주 키우랴.
또 항암하고 온 딸내미 밥 차려주고 신경 쓰느라 쉬지도
못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누워있을 수 있을까?

사실 한참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정엄마는 내가 자꾸 거실소파에 나와있어서
의아했었다고 말했다.
몸이 힘들 텐데 왜 자꾸 나와있지?
들어가서 좀 쉬면 될 텐데.. 생각하면서 말이다.

난 내가 방에서 계속 누워있으면 엄마가 신경 쓸 것
같고 엄마한테 둘째 아기를 온전히 맡기는 게 미안해서
거실에 내내 있었던 건데..
남들은 항암 받고 요양병원 가서 몸관리도 다 받던데
난 그러지도 못하고 편히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조금 속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 엄마와 솔직하게
대화하고 좀 편하게 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부작용은 2-3일 뒤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나에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까??
유방암카페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사람마다 달라서 1차가 힘들었다.. 어떤 이는 3-4차가 힘들었다.. 그래도 견딜만하다.. 아니다 6차 내내 죽을뻔했다.. 등등 너무 달라서 예측한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똑같이 겪는 부작용이 하나 있다.
유방암이라면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머리카락 빠짐..!!

항암을 하고 14일 후쯤부터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한다.
나는 13일째 되는 날까지 머리카락을 당겨봐도
빠지지가 않았다.

엄마엄마~혹시 난 0.1% 뭐 그런 걸로 안 빠지는 거
아닌가?? 내가 다니는 병원에 머리카락 안 빠졌다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리고 다음날.. 내가 한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샤워를 하는데 잉? 머리카락이 느낌도 없이 슥슥
빠진다.


아.. 시작되는구나!!
이게 TV에서 봤던 그거구나!

일단은 뭉텅이로 빠지는 게 아니니 두건을 쓰면서
견뎌보기로 했다.
역시나 머리카락이 안 빠지는 그런 행운은 없었다.
이제 겨우 5살 된 첫째 아이가 놀라지 않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 그냥 있는 그대로 전하자..!

"아들~ 엄마가 가슴 아파서 병원 가는 거 알지??
그래서 아프지 말라고 맞는 주사가 머리카락이 빠지는
주사래.. 엄마 이제 머리카락이 계속 빠져서 하나도 안
남을 거야.. 빡빡머리가 될 텐데 괜찮아?"
라고 물었다.

"엄마~그럼 모자 쓰면 되지..!!
머리카락은 또 자라잖아~"

너무나 쿨하게 대답하는 아들.. 나의 소중한 아가.
아이의 그 말이 왜 그리 위로가 되던지..
그래 네 말이 맞아.. 다시 자랄 거니까..
암덩어리만 없애준다면야 머리카락이 대수겠어??


항암 중에 왔던 오한 말고는 1차 이후 내가 겪은
부작용은 근육통, 무기력함, 피곤함, 불면증 정도였다.
진통제를 처방해 주셔서 그걸 먹으면 견딜만한 정도라
아~앞으로도 이 정도만 되면 괜찮겠다.
항암 엄청 무섭다고 들었는데 견딜 수 있겠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 나는 구역, 구토가 없어서 엄마가 차려주는 삼시
세끼 밥상을 항상 비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먹지 않았던 아침까지
꼬박꼬박.. 안 먹고 싶어도 안 먹으면 버텨낼 수 없는 걸
알기에 참 꾸역꾸역 열심히도 먹었다.

아픈 딸 먹일 거라고 장 봐 와서 밥상 차려주고 한 달도
안 된 둘째 손주 돌보고 질투하는 첫째 손주 달래서 등
하원 준비, 씻기기, 밥 먹이기, 재우기. 우리 집, 엄마 집 청소하고 아빠 밥 차려주고..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어서 모든 걸 대신해 내는
엄마가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걱정됐다.
지금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걸 어떤 맘으로 견뎌냈을지
엄마의 마음을 아마도 난 다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항상 항암을 하고 나면 일주일 뒤 외래에 가서 채혈을
했다. 여러 가지 수치들을 확인하고 내 상태에 따라 약
처방을 받고 남은 2주 동안 또 폭풍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항암을 가기 며칠 전.
신기하게도 서서히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항암이 3주 간격인 걸까??
생각보다 쇄골 밑에 심은 케모포트가 꽤 아팠다.
통증도 통증인데 내 몸 안에 무언가 심어져 있다는
이물감이 너무 기분이 나쁘다.

이제 첫 항암.. 갈길이 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