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돌도 안된 너에게 이렇게 위로받아도 될까?
그래도 내 머리카락은 아빠가 밀어주었으면 좋겠어.. 불효녀라 미안해..
생각보다는 덜 힘들었던 1차 항암이 끝나고
3주 후 2차 항암을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잘 챙겨준 덕분인지 다행히도
3주 만에 온몸이 정상수치로 돌아와서
항암은 밀리지 않고 예정된 날짜에 진행되었다.
수술 전까지 6번의 항암은 2박 3일 입원을 해서
쇄골아래 심어져 있는 케모포트로 주사를 맞는다.
그래서 두 손이 자유롭기 때문에 신랑 없이 혼자 입원을
하기로 했다. 매번 일을 빠질 수도 없고 1년이 넘는 긴
싸움이라 혼자 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우수수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비니를 쓰고 입원했다. 평소에 모자도 잘 안 썼던 터라
그런지 너무 갑갑해서 병실커튼을 치고 잠깐씩 비니를
벗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는데
병실청소원께서 들어오셨다.
항암시작한 지 얼마 안 됐나 봐요..
바닥에 나뒹구는 내 머리카락을 쓸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다급하게 비니를 눌러쓰고
"정말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괜찮아요" 미소 지으시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병실을 나가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눈물을 꾹 참고
생각했다.
이번에 퇴원하고 나면 바로 쉐이빙을 해야 되겠어..!!
별 탈 없이 2차 항암을 하고 퇴원 후 집에 왔다.
기운이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긴 했지만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감기몸살쯤
앓는 사람처럼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진단 후 유방암카페에 가입해서 여러 정보를 얻고
대비할 일들에 마음먹어가며 도움을 받았었는데 항암
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아는 것도 좋지는 않다며
그때그때 자신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보고 대처하라는
글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리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겁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퇴원 후 3일 정도 지나자 엄청난 설사가 시작되었다.
바보같이 항암 중이니 일반약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고
부작용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설사를 하면 그냥 그렇게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며칠을 하루에 열댓 번씩 화장실을 오가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매일 휴대폰을 들고 살면서 왜 이것 하나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을까?
부작용으로 설사를 하는 환우들은 지사제도 먹고
기력이 없으면 동네병원에라도 가서 수액을 맞는다고
했다.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 그동안 뭐 한 거지??
혼자 왜 이렇게 고생한거지??
갑자기 너무 슬프고 서럽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괜히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왜.. 아무도 몰라?? 누가 나한테 좀 알려주면 안 돼??
나 이렇게 힘든데 대신 좀 찾아봐주고
챙겨주면 안 되는 거야??
일 마치고 온 남편에게도 짜증만 냈었다.
엄마는 연세도 있으시고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당신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아픈 게 걱정도 안 돼? 내가 무슨 병인지
찾아보기는 했어? 감기 같은 거 걸렸다고 생각하니?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은 후
설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급격하게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샤워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머리를 감으려고 손을 대니 정말 한 움큼씩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걸려 나왔다.
드디어 때가 됐구나.. 싶었다.
미용실에 가서 자를까도 생각했는데 그냥 아빠한테
부탁하기로 결정했다. 친정아빠는 50년을 넘게 이발사로 일하셨다. 가족들 여태껏 먹여 살리고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일하나 싶으셨을 텐데 딸이 암에
걸려서 머리카락을 잘라달라고 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나도 몰랐어 아빠.
내가 이런 불효를 할 줄은.. 미안해.
그래도 아빠가 해주었으면 좋겠어.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질 때만 해도 오히려
신기하네? 진짜 이렇게 빠지네?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먹었다 해도 나도 여자라 그런지
눈물이 났다.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그깟 머리카락이 뭐라고.. 내 몸만 나으면..
내 몸에 암덩어리들만 없앨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밀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몰래 실컷 울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쉐이빙을 했다.
중학교 때 칼단발하던 시절.. 아빠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주었는데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한 번에 다 자르진 못했다.
난 다 밀어버리라고 진짜 괜찮다고 말했는데 아빠가
괜찮지 않아서일까? 짧은 단발로 자르고 좀 더 빠지면
그때 잘라줄게... 하셨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으셨는지 더 묻지
않으셨다.
드디어 항암치료 중 큰 고비인 쉐이빙을 했다.
엄마도 아빠도 깨끗해진 내 머리를 보며 애써 웃어
보이셨다. 나도 한껏 시원해진 머리를 만지며 차라리
후련하다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우리 큰아들.. 미리 말은 해두었지만
그래도 많이 놀랄 텐데.. 괜찮을까?
몇 시간 후 큰아들이 하원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와 엄마 너무예뻐..!!
누가 엄마 놀리면 내가 혼내줄게..!!
모자 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이제 겨우 5살..
네돌도 안된 너에게 이렇게 위로받아도 될까?
우리 아들은 천사가 분명해.
아들을 꼭 껴안으니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하루가
치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