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 오늘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5개월이 지나 수술이 코앞으로 다가와있었다.
벌써 4차 항암이다.
코로나 후유증이었던 목덜미 통증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손톱은 하얀 줄이 생기고 울퉁불퉁해졌으며
이번 항암에는 새로운 부작용으로 오심이 생겼다
구역질이 자꾸 나와서 그걸 막아주는 패치를 팔에
붙였는데 붙인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매회차마다 이렇게 다양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며칠 전 중간검사로 찍었던 mri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 5cm였던 암덩어리가 2cm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항암약발이 잘 듣고 있나 보다..
진짜 더럽게 고생한 보람이 있네...' 하며
속으로 웃었다.
항암치료와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하고 더 이상 몸에
암세포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완전관해라고 한다.
내 목표는 단 하나.. 완전관해다!!
수술 후에 검사를 해서 암세포가 잔존하면
불완전관해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재발률도 올라가고
후항암약도 달라진다고 했다.
남은 2cm마저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치료받던
어느 날이었다.
역시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게 내 인생인가?
남들은 몇 년 동안에도 아무 문제 없이 몸에 심고
있다는 케모포트에 염증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쇄골 쪽에 옷만 스쳐도 살이 쓰라리고
가만히 있어도 바늘을 한 움큼 쥐고 내리찍는 아픔이
계속됐다.
진료 때 교수님께 말씀드려 피검사를 했는데
염증수치가 많이 높지 않아서 일단 6차 항암까지 참고
지금 심어져 있는 케모포트로 항암을 하기로 했다.
수술할 때 현재 오른쪽에 있는 포트를 제거하고 왼쪽에
다시 심을지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더 이상 몸에 상처가 남는 게 싫어서 마음은 케모포트를
안 심고 항암 받고 싶은데 수술 후에 남은 표적항암
횟수가 12번이라 혈관이 버텨줄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 암 걸린 것도 속상한데 케모포트까지
말썽이라 한동안 씩씩한 척 버티던 멘털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참 신기하게도 5차 항암까지 항상 있었던 설사가
6차 항암 때는 없어졌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항암 받을 때도 컨디션이 좋았고
받고 나서도 기력이 조금 없는 것 말곤 모든 게
괜찮았다.
케모포트 염증 때문에 아픈 건 여전했지만 부작용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뭔가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5개월 동안 힘든 치료를 견딘 나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고 손주들이랑 딸 간호하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한
엄마도 너무 고맙고 잘 지내주는 아들들에게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수술을 기다리는 몇 주 동안
울다가 웃으며 나름 즐겁게 보냈다.
마치 언제 내 몸에 암이 있었냐는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환우들 카페에 여려 글들을 보면 항암만 잘 견디고 나면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래... 힘든 항암산 넘었으니 이제 내가 못 견딜게 뭐가
있나 싶었다.
수술날짜가 첫째 아들 생일로 잡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은 아닌 것 같아 말씀드렸더니
다시 잡은 날짜가 또 첫째 아들 유치원 첫 운동회날이
아닌가? 친정엄마는 그게 뭐라고 그냥 빨리 잡으라고
했지만 또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살라. 오늘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왜였을까? 저 문장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든 건 장담할 수가
없다. 아들 운동회도 한번 같이 못 간 엄마는 될 수
없었기에 운동회 다음날로 입원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담당교수님께서도 이해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가발을 쓰고 운동회에 가서 줄다리기까지
참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와 입원짐을 챙겼다.
이유는 없지만 그냥 수술결과가 나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