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밍아웃.. 잘한 걸까?
아프고 나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
병은 소문내야 빨리 낫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었다.
그게 미신이든 뭐든.. 다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 유방암이라고.
모두들 건강 잘 챙겼으면 좋겠다고.
다들 처음엔 놀라서 어떡하냐고 걱정하고
그다음엔 위로를 해주었다.
치료 잘될 거니까 힘내라고..
난 친구가 많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마음으로 정말 가깝다고 생각한 친구가
몇 명은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아프고 나서
멀어졌다. 아니 내가 멀리 하는 건가??
항암치료받느라 정말 힘들었을 때도
암수술 후 열흘이 넘게 입원했을 때도
병문안을 왔던 친구는 없었다.
병문안을 가도 되냐고 물어본 친구도 없었다.
코로나시국이라 예민하기도 했고
다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바빴던 것도 이해하지만
가슴깊이 느껴지는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친구들에게 서운함보단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나 창피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내 곁에 좋은 사람이 없는 걸까?
그들에게 난 좋은 친구였을까?
내가 이렇게 투병하다 혹여나 잘못된다 한들
정말 슬퍼해 줄 사람이 있을까?
이런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이렇게 몸이 아프고 나니 결국 내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는 건 가족이었다.
수술하고 입원기간 동안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항암 받을 때도 연락 한번 없던 그 친구가 야속했지만
연락이 뭐 대수냐.. 내가 먼저 하면 되지 싶었다.
씩씩한 척 통화하는데 친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넌 왜 그리 젊은 나이에 암이 걸렸어?
평소에 비타민이나 오메가 3 같은 영양제도 안
먹었어?"
하.. 나 전화 괜히 했구나..
며칠 전 암수술한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상처만 잔뜩 받고 그 뒤론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했던 친구들보다 적당한 거리가 있었던
친구가 수술하고 퇴원했을 때 집으로 찾아와 줘서
밥도 먹고 가발 쓴 내 모습을 보고 울기도 하고 1년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종종 연락을 해주었다.
가끔 안부만 묻던 직장동료가 항암 때 잘 먹어야 한다며
전복을 보내주기도 했었다.
나만 잘 몰랐을 뿐.. 이렇게 좋은 사람도 내 곁에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픈 소식을 듣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연락을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암밍아웃은 안 했을 것 같지만
모든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다.
친구가 있어도 친구가 없어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살아있고
가족들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