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다.
우리 아들들이 멋지게 커가는 모습.. 꼭 엄마가 지켜볼게..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할머니소식이구나..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항암치료 중이었고 친정엄마도 갓난쟁이
둘째 손주 육아에 딸 병간호까지 하느라 찾아볼 정신이
없었다.
수술만 하고 회복되는 대로 꼭 뵈러 가야지 했는데 결국
내가 퇴원하기 전날 돌아가셨다.
9살 때쯤.. 앞으로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어서 방을
같이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심술이 났었다. 나도
오빠처럼 내방이 갖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되니
할머니께 꽤나 짜증을 부려댔었다. 철없는 때이긴
했지만 매일같이 툴툴대는 손녀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래도 할머니는 항상 등굣길에 내 책가방을
들어주셨다. 전학하면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며 원래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되어서 아이치곤 걷는 길이
길었는데 할머니는 다리운동한다는 핑계로 6학년 졸업
때까지 나와 같이 등굣길을 걸었다.
학교가 다 와갈 때쯤 준비물을 잊어버린 어떤 날은
손녀등교시간 늦을까 싶어 집까지 힘들게 뛰어갔다
오는 할머니가 그땐 왜 그리 당연했을까?
그렇게 10년 가까이 할머니와 나는 서로
툴툴거리면서도 아끼는 룸메이트였다.
따로 살게 되고 나도 성인이 되면서 내 생활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뵙지도 못했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 때문인지 애틋함이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퇴원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영정사진 속의 할머니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할머니.. 할머니가 나한테 있는 안 좋은 것들 다 가지고
가려고 나 수술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금 떠난 거야?
그래도 조금만 더 있다 가지 그랬어..
나 회복되는 대로 할머니 보러 가려고 했는데..
94년 세월 고생 많았어요..
할머니.. 나 오래 살고 싶어 졌어.
그러니까 가시는 길에 손녀한테 있는 불행들 다
걷어주고 가세요.. 내 몸이 이래서 내일 할머니
마지막길은 못 가요.. 미안해.. 할머니..
며칠 후.. 수술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다들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누구도 티를 내지 않았다.
대기자명단에 내 이름이 한 칸씩 올라갈 때 얼마나
두렵고 떨었는지 모른다. 옆에서 괜찮을 거라고
다독이는 남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남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잘 지냈어? 결과를 한번 볼게.. 음.."
교수님이 모니터를 보고 내 얼굴을 쳐다보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음.. 선항암을 하면 10명 중에 6명 정도가 완전관해가
되거든? 그 6명 안에 들었네?
수술결과가 좋아.. 축하해..!!"
완전관해.
수술로 떼어낸 조직에 암세포가 남아있지 않은 것을
완전관해라고 한다.
완전관해가 되어야 재발률이 많이 떨어진다고 했기
때문에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제발 제발 완전관해되길..
지난 5개월 동안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지금보다
더 힘들어도 되니까 제발 완전관해만 되게 해달라고.
더 이상 안 좋은 일 있는 건 정말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빌고 또 빌었었다.
내 기도가 닿았을까?
아니면 정말 할머니가 떠나면서 도와주신 걸까?
교수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너무 좋아서 연신 웃어댔다.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만약 좋은 결과를 듣게 된다면
눈물이 펑펑 나서 아무 말도 못 하지 않을까?
그런데 눈물은커녕 계속 웃음만 나왔다.
그동안의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신랑이 정말 고생 많았다며 토닥여주는데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 진짜 고생했어.. 그래서 너무 기분 좋아..!!"
치료가 길어지면서 몸은 괜찮은지.. 수술은 언제
하는지.. 내 기분은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참 외롭다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런 것보다
몸 관리 잘해서 우리 애들 옆에 오래오래
있어줘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니 친정엄마가 울면서
안아주었다.
내 딸..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그제야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울었다.
출산한 지 2주밖에 안 돼서 항암치료를 시작한 딸과 핏덩이 손주를 키우면서 밤마다 울었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 이걸 다 갚을 수 있을까..
그런데 최종 결과를 들어보니 왼쪽 가슴에 있던
암덩어리는 5.8cm였고 겨드랑이 림프로 전이되어
쇄골밑까지 꽤 암세포가 퍼져있었다고 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나의 병기는 유방암 3기.
아마 그때 우리 둘째를 품고 있지 않았다면 장기나 뇌,
뼈 쪽으로 전이돼서 4기가 됐을 것이다.
이제 내 몸에 있던 몹쓸 암세포들은 없어졌고
남은 치료 잘 받아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그것만 생각하고 지내기로 결심했다.
건강하게 살아내서 우리 두 아들들을 내 손으로
씩씩하게 키워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크면 너희들이 어릴 때 엄마가
많이 아팠는데 잘 이겨내서 지금 곁에 있는 거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그냥 평범한 할머니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분들도 저마다 사정이 있고 몸도
아프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 연세까지
살아있음이.. 그 자체가 부러워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돈걱정 없이 맛있는 것도 먹고 해외여행도
다니는 그런 삶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모든 것들도 내가 세상에 살아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