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곁에 있어줄게..
아이들에게 아픈 엄마로 기억되지 않도록 지금을 이겨낼 거야..
후항암 12번 중 3번째 항암을 끝냈다.
몸은 많이 피곤하고 기운이 없지만 다행히 큰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심장이 찌릿한 통증이 있어서 혹시 허셉틴 항암제 부작용으로 심장이상이 있는지 초음파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방사선치료도 시작했는데
총 23번의 방사선치료를 주 5회씩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진행한다고 했다.
방사선치료를 절반정도 받을 때쯤 첫째 아이에게
고열이 찾아왔다.
1년 전 가와시키병에 걸렸을 때 말곤 5살이 될 때까지 열이 난적 없었던 아이라 덜컥 겁이 났다. 주말이고 아동병원이 모두 진료가 끝난 상태라 무서운 마음에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으로 데려갔다.
코로나시기인 데다 대학병원 응급실이라 각종 검사를 마치고 입원하고 보니 병명은 수족구였다.
지나고 보니 대학병원까지 갈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몸이 아프고 아이 또한 크게 아픈 적이 없어서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방사선치료로 매일 병원에 갔던 터라 아이가 입원 중에도 난 치료를 받으러 가야 했다.
보호자였다가 다시 환자로..
병실에 아이혼자 둘 수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방사선치료실에 갔다.
"엄마 가슴 아픈 거 때문에 치료받고 올 건데
여기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 보면서 기다려줄 수 있지??
진짜 금방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핸드폰을 아이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응 엄마 치료 잘 받고 와..!!"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고작 5살인 아이를 방사선치료실 같은 곳에 따라오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항암과 방사선치료로 바닥난 체력이 아이보호자로 며칠 입원생활을 하면서 더 버틸 수가 없는지 퇴원하고 결국 몸살이 났다.
계속되는 치료로 몸은 지쳐가고 방사선치료 때문에 몸에 그여진 선들이 지워질까 싶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여름인데도 아이들과 물놀이 한번 못해주는 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올해만 여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해져서 다음에 놀러 가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게 잘 들어오질 않았다. 맞는 말 이긴 하지만 다음이라는 단어가 왜 그리 의미 없게 느껴지는 건지..
물론 난 치료 잘 받아서 이겨낼거긴 하지만 지금이 너무 소중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인 데다.. 내가 이렇게 큰 병에 걸리고 나니 마음 한편엔 혹시라도 나에겐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있어서 자꾸 아이들에게 뭐라고 해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