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출산 2주 만에 항암을 시작했다.
상피내암이 아니라 유방암 3기에
겨드랑이와 쇄골까지 암이 전이됐다는 게
나의 현실이었다.
검사결과를 듣고 다음날 항암을 하기 위해 입원을 했다.
단 한 번도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어서
나도 걱정되고 아이들도 너무 걱정됐다.
그리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항암치료가 너무
두려웠다.
막연하게 항암은 머리가 빠지고 엄청 고통스럽다고만
알고 있었다.
수술 전 6번의 항암과 수술 후 12번의 항암
나는 총 18번의 항암을 받아야 한다.
항암약이 독성물질로 암을 죽이는 거라 혈관이 많이
망가지기 때문에 케모포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쇄골 쪽 피부밑으로 기구를 심어서 그쪽으로 약을
주입하면 혈관손상도 없고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해서
편하다고 했다.
겨우 잘 참고 참았는데 입원 후 케모포트 시술하는 날.
결국 터지고 말았다.
부분마취로 시술을 하는데 시술 과정이 다 느껴져서
무섭다는 말을 들은 후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유방암카페에서 여러 후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두려워졌다.
왜 지금 내가 이런 시술을 받아야 하는 걸까?
차가운 수술방에 멀쩡하게 눈뜬 채로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야?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감정이 바닥을 쳤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 간호사를 붙잡고 제발 나 좀
재워달라고 울었다. 너무 무섭다고.. 너무 두렵다고..
수술대에 누워서도 교수님한테 울면서 말했다.
너무 무서워요.. 저 못하겠어요..
그래도 내 또래였던 교수님이 시술 내내 말을 걸어주며
정말 진심으로 위로해 준 덕분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시술받으면서.. 교수님께 물었다.
우리 아들들 커가는 거 볼 수 있을까요?라는 내 물음에
너무 당연하단 듯이 웃으면서 손주까지도 볼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교수님 말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케모포트 시술은 아프고 불편한 느낌이 강했지만
생각보다 견딜만한 아픔이었다.
아마 케모포트라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걸 알게 되고 또 그런 걸 내 몸에 심는다는
자체가 너무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다음날.
드디어 첫 항암을 시작했다.
tchp 4가지 약을 사용하는 데 주사를 맞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이거구나.. 이런 독한 약이 내 몸에 들어가는구나.
너희들 제발 내 몸에 있는 암덩어리 좀 없애주라.
나도 독한 너희들 버텨볼 테니 꼭 싸워서 이겨내 주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사를 맞았다.
그러다 갑자기 주사를 맞는 도중 오한이 왔다.
온몸이 떨리면서 급격하게 추워졌다.
지켜보던 남편이 급하게 간호사를 호출하고 또 다른
주사를 맞고 나니 점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오한을 제외하고는 큰 이벤트 없이 1차
항암을 끝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가 진짜 시작일 것이다
보통 항암은 맞고 2-3일 뒤부터 부작용이 시작된다고
한다.
독한 약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나쁜 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다 공격해 버리니
내 면역력은 바닥을 칠 거라고 했다.
사람마다 부작용이 달라서 나도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일단 유방암은 99프로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하니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 큰아들에게 엄마가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그걸 가장 고민했던 것 같다.
2박 3일간의 1차 항암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 얼굴을 보니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다.
버티자 버텨내자.
난 엄마고 아직 내가 지켜줘야 할 두 아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