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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Dec 12. 2024

오로라를 찾아서... #8

나의 첫 오로라 - 오로라는 별과 함께 온다.

오로라를 찾기 위한 항해를 떠난 후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상황은 갈수록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야 한다.

오로라가 나타나는 지역에 있을 것과 태양풍, 그리고 맑은 날씨이다.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다. 막대자석에 철가루를 붙여보면 제일 끝 한가운데가 아니라 약간 아래쪽에 철가루가 더 많이 모이듯이 태양에서 날아온 전자 입자들은 극점의 약간 아래 부분에 모이게 된다. 이 전자 입자들이 대기 중의 공기와 충돌하면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것이 오로라이다.


오로라는 지자기가 강력한 남극점과 북극점으로부터 위도 15도에서 30도 내려온 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위도로 치자면 60도와 75도 사이가 오로라가 많이 나타나는 지역인데 그 지역을 오로라 오벌(Aurora Oval)이라고 부른다. 오로라 오벌은 달걀 형상의 띠를 두르며 자극점을 둘러싸고 있는데 노르웨이 쪽에서는 북극권 바로 위쪽이 오로라 오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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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로라 오벌에만 가면 당연히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조건, 태양풍과 맑은 날씨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오로라를 볼 수 없다.


태양으로부터 날아오는 전자 입자, 즉 태양풍은 태양 흑점의 폭발과 관계가 있다. 태양 흑점은 11년 정도의 주기로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흑점이 가장 활발하게 생성되는 2012~2013년이 오로라를 관찰하기 제일 좋을 때라고 하니 나는 그때 북극권에만 가면 오로라를 보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렇게 오로라 보기가 힘들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건 날씨다. 밝은 낮에는 하늘에 오로라가 떠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태양빛을 피해(아니 이기지 못해) 캄캄한 밤에만 나타나는 (낮에는 보이지 않으니) 오로라가 구름을 이길 수는 없다. 태양빛도 짙은 구름을 뚫지 못하니 오로라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는가.


원래 노르웨이 해안은 멕시코 만류 때문에 습기가 많아 흐린 날이 많다지만 그래도 하루에 몇 번씩은 하늘이 열리게 마련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흐린 상태가 지속되니 오로라가 터져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낮이 짧아 맑은 날에도 서너 시간 간신히 세상을 식별할 정도인데 날까지 흐리니 하루에 한 시간 남짓 바깥세상을 볼 수 있을 뿐, 나머지 시간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들려오는 소식으론 우리가 며칠 전 지나갔던 트롬소 남쪽으로는 연이틀째 날이 맑아 오로라를 잘 보고 있다고 한다. 즉, 태양풍은 잘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오로라는 지상 100킬로미터까지 나타난다고 하니 지금도 내 머리 위 짙은 구름 위에서는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나만 볼 수 없을 뿐.

오로라가 우리를 피하는 걸까? 오로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로라를 보고 싶은 갈망은 커져만 갔다. 역경이 계속될수록 열매는 더욱 달게 느껴지는 법, 초반에 제대로 된 오로라를 보았다면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


그렇게 오로라를 기다린 지 거의 2주일이 지났다. 내일이면 오로라를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채 노르웨이를 떠나게 된다.

오로라를 보려면 하늘이 열려야 한다.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별빛이 쏟아지지 않으면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라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허둥지둥 쫓아가면 이미 오로라는 아스라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곤 했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의가 필요했다. 나는 마지막날 밤 배의 9층 갑판에서 오로라를 기다리기로 했다. 밤 11시가 되자 옷을 든든히 입고 갑판으로 나갔다. 갑판에는 역시나 원망스런 눈보라가 흩날린다.


노르웨이에 와서 변화무쌍한 일기 변화를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눈 온다고 실망 말고 날이 맑다고 기대하지 말라’는 이 지방에서 얻은 격언을 떠올리며 나는 애써 희망찬 눈빛으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눈이 그치고 갑판 바닥은 쌓인 눈으로 미끌거렸다. 갑판 뒤편으로 향하자 하늘에 하나 둘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별이다!”

일단 별을 봐야 오로라도 보인다. 힘이 솟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로라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이번엔 진짜다.


나에게 오로라는 별빛과 함께 나타났다. 오로라는 별에서 내려오는 듯했다. 커튼처럼 드리워지다가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나온 표현 그대로였다. 실크보다 얇은 고운 빛깔의 천들이 나부꼈다. 그 빛은 사진에서처럼 강렬한 녹색은 아니었으나 연하게, 그래서 더욱 부드러운 빛으로 흩날렸다.


한 군데 두 군데 북극성 아래에서 시작해 소용돌이치듯 나타났다가 또 다른 쪽으로 옮겨가며 오로라는 한 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점점 짙어가고 점점 넓게 퍼져갔다. 곧 북쪽 하늘은 온통 오로라로 뒤덮였다. 너울거리는 모습은 은하수가 쏟아지듯, 아니 온 하늘에 은하수 지도가 펼쳐지는 듯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오로라의 현란하고 아련한 춤은 계속 됐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러다가 구름에 밀린 듯 조금씩 희미해졌다.


구름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오로라를 보며 다시 한번 화려한 춤의 향연을 기대해 본다. 북극성 아래 앉아 오로라를 기다린다. 구름과 함께 쉬고 있는 오로라는 희미한 연기구름처럼 보였다. 그러나 구름과 오로라는 다르다. 구름은 별빛을 가리지만 오로라는 별과 함께 있다. 별과 함께 쉬고 있다.

쉬고 있는 오로라는 평화롭고 안온해 보였다.


아까 본 오로라는 레벨 7에 달하는 꽤 강렬한 오로라였다. 다시 한 시간이 흘렀다. 오로라에 빠져 잊고 있던 추위가 다시 몰려들었다. 북풍은 거셌고 손발이 점점 얼어붙어왔다. 강렬하게 터졌던 오로라가 마치 꿈결이었던 양 벌써 아련해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가는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려서 내가 보았다는 것조차도 꿈만 같다.


카메라를 통해 내가 본 오로라의 실체를 확인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똑같은 오로라였으나 카메라 속의 오로라는 마치 슬로모션으로 필름을 돌린 듯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눈으로 다시 보고 싶었다.


두 시간을 기다렸다. 오로라는 잠깐 넓은 커튼을 드리우며 북쪽 하늘 전체를 휘감았다가 곧 다시 사라지고는 잿빛 구름처럼 낮게 깔렸다.

새벽 2시.


우리가 마침내 오로라를 만난 곳은 오로라 오발 바로 아래에 자리한 북위 64도, 뢰르빅에서 트론하임으로 향하는 중간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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