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오로라 (1)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유일한 도시 옐로나이프는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추천하는 오로라 관측을 위한 최적의 장소'임을 자랑한다. 오로라 오벌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연간 맑은 날이 240일 이상이며,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시야가 시원하게 트였으므로 사방 어느 각도로 오로라가 뜨더라도 쉽게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관광청은 ’나흘 연속으로 머물렀을 때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볼 확률은 95%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만한 확률은 드물다. ’설마 내가 5%에 들겠어?‘ 하는 마음으로 투자한 시간에 대비하여 가장 경제적으로 보이는 오로라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에서 날씨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구름 낀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던가. 옐로나이프에만 가면 원수 같은 구름이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마음껏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로라 오벌 아래 위치하여 북쪽 하늘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춤을 추는 오로라를 볼 수 있다니 기대도 컸다.
금이 발견되면서 생겨난 도시 옐로나이프는 광업과 함께 관광업이 주 수입원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옐로나이프 타운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로라 빌리지는 도시 불빛을 피하여 호숫가 침엽수림 사이에 조성된 오로라 관측 단지. 추위를 막아주는 인디언식 티피 텐트를 설치해 놓고 간단한 간식을 제공하며 여러 가지 오로라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두툼한 캐나다구스 파카와 눈 위에서 신는 소렐 부츠, 극지용 장갑과 모자를 세트로 대여해 주며, 호텔에서 손님을 픽업하고 데려다주는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오로라 빌리지를 찾는 관광객들은 처음엔 대부분 일본인이었지만 점차 한국인과 중국인 손님도 많아진다고 한다.
캘거리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저녁 시간에 옐로나이프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에서 궂은 날씨에 한이 맺혀 맑은 하늘만 기다리던 나다. 캐나다에만 오면 매일이 맑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왔건만, 빌리지로 가는 버스 창 밖의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다. 먼저 와 있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 벌써 닷새째 날씨가 이 모양이라서 전날 철수한 일본 관광팀은 4박 5일간 결국 오로라를 단 한 번도 못 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직원들은 이제까지 연속으로 이렇게 흐린 날은 없었다며 기상이변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옐로나이프의 날씨는 12월과 3월이 가장 좋고 2월에는 가끔 이렇게 흐린 날이 계속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사와 오로라 빌리지에서는 그런 말에 대해 쉬쉬하며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그저 회피하려고만 한다. 그런다고 닫힌 하늘이 열리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사실 그대로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대답만 하도록 미리 교육을 받은 것 같다. 날이 흐리니 한낮 기온도 높아져서 영하 15도 정도까지 올라갔다. 예년 기온은 영하 20도 아래지만 여기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듯하다.
오로라 빌리지의 낮 프로그램에는 개썰매, 설상화 트레킹, 튜브 눈미끄럼 등의 체험 활동이 포함되어 있다. 늑대를 닮은 개들은 개장에 갇혀 늑대처럼 짖어대다가 관광객이 오면 썰매를 끌고 오로라 빌리지를 한 바퀴씩 신나게 달린다. 열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가 끄는 개썰매를 타 본 사람들은 개들이 불쌍하다지만 나는 뒤에서 10여분 내내 썰매를 밀고 끌며 달리는 썰매꾼에게 더욱 미안했다. 차라리 개들은 우리에 갇혀있는 것보다 이렇게 침엽수 사이를 달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툰드라 초입의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사이 숲길을 썰매로 달리는 기분도 상쾌하지만 오로라 빌리지의 존재 이유는 역시 오로라 관찰에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투어는 보통 4박 6일, 오로라 빌리지에서 나흘 밤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 매일 밤 10시면 오로라 빌리지의 버스가 옐로나이프 시내 호텔에 들러 사람들을 태우고 갔다가 새벽이면 다시 내려준다. 그런데 이틀 밤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NASA가 인정하는 오로라의 도시 옐로나이프는 일주일째 짙은 구름 아래 잠겨 있다. 사흘째 되는 밤, 9시에 셔틀에 올랐다. 한정된 일정 안에 오로라를 보기 위에 먼 길을 온 사람들. 벌써 이틀을 허탕 쳤지만 아직은 웃음을 잃지 않고 오로라를 기다리는 소망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날은 한국인들만 빌리지에서 조금 떨어진 ‘파 레이크(먼 호수)’까지 걸어가서 오로라를 기다리기로 했다. 출발 전에 날씨와 오로라 오벌 상태를 확인해 보니 예보는 밤새 흐림으로 나온다. 20여 명이 달빛 하나 없는 보름날 먼 호수를 향해 눈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다시 눈이 쏟아져 내린다. 파 레이크는 오로라를 보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다. 인공 불빛 하나 없는 가문비나무 숲 사이에 자리 잡은 호수는 눈에 덮여있고, 동서남북 사방이 거칠 것 없이 뚫려 있다. 문제는 짙은 구름과 하루 종일 지치지도 않고 내리는 눈. 구름이 어찌나 짙은지 오로라는커녕 내리는 눈만 쳐다보다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두 시간이 흘러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오지만 하늘이 열릴 기색은 전혀 없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의 대화 사이로 조금씩 불안과 초조감이 스며 나온다.
한국에서 옐로나이프까지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며 스무 시간을 걸려 찾아온 사람들, 생애 최초의 오로라를 보러 여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오로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타격일 것이다.
옐로나이프는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예쁜 구석이라곤 별로 없는 도시다. 마치 창고처럼 무뚝뚝하게, 오로지 실용성만으로 지어진 집들, 고작 백 년 안쪽의 짧은 역사 속에서 마을의 볼거리 리스트에 올라 있는 박물관이나 주정부 청사도 그저 그럴 뿐이다. 이 외진 도시에서 쇼핑을 할 게 있나, 맛있는 먹거리가 있나, 오직 오로라만이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다.
오로라 빌리지에서 오랜 시간 함께 오로라를 기다리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반응 유형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 무조건형.
하루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일단 오로라 빌리지에 남아 오로라를 기다려볼래요. 혹시 알아요? 오로라가 나타날지, (지성이면 감천?)
둘, 전문가 의존형.
오늘 일본에서 오로라 전문가가 빌리지에 방문했는데 경험상 조금 있으면 하늘이 갤 것 같답니다. 전문가 말이니 맞을 거예요. (일기예보가 정확할까, 오로라 전문가의 경험치가 정확할까? 오로라 전문가 맞나? 혹시 점장이 아냐?)
셋, 의지형.
오늘 오로라를 꼭 봐야 해요. 오로라는 꼭 나와야만 해요. (하늘이 그대의 의지대로 따라줄까? 기다린다고, 희망한다고 될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넷, 보험 만능형.
비행기 값이야 어쩔 수 없지만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를 보지 못하면 비용을 물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오로라를 못 보면 물어주는 보험 상품을 개발해야죠. (보험료는 쌀수록 좋겠지?)
다섯, 끝까지 가보자 형.
언제 다시 여기에 오겠어요? 예약한 비행기 취소하고 며칠 더 머무르며 오로라를 기다려 볼래요.(앞으로 일주일간 계속 일기 예보가 좋지 않은데 도박을... 그러다 끝까지 오로라를 못 보면 어쩌려고...)
오로라 빌리지는 퇴장 시각인 새벽 1시를 지나 머무는 사람에게는 시간당 2~3만 원의 추가 요금을 받는다. 그것도 하나의 장삿속이다. 어차피 오늘은 짙은 구름 때문에 못 볼 것이 뻔한데도 오로라 빌리지 직원은 그저 더 머물 사람은 미리 신청하라고 끊임없이 안내를 반복한다. 밤 10시가 넘어서자 하늘에서는 그쳤던 눈이 다시 폴폴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들은 ‘날씨가 다시 좋아질 수도 있다’면서 자세한 일기예보 정보는 절대로 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오늘은 오로라가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에서도 아이슬란드에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쉽게 오로라를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옐로나이프에 오기만 하면 무조건 나흘 안에 오로라를 볼 거라는 나의 믿음이 자연의 이치를 넘어서는 인간의 교만함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