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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Nov 28. 2024

오로라를 찾아서... #6

희미한 오로라도 오로라?

처음으로 오로라를 만났던 날.

나는 평생 처음 오로라를 보았으되 제대로 보진 못했다.


북극권을 통과한 다음 날, 샌드네스왼(Sandnessjoen)에 들어설 무렵 오로라가 나타났다는 선내 방송에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갑판으로 뛰어나갔다.

칠흑 같은 바다 위로 연기처럼 희끄무레한 빛이 생겨서 어슴푸레 흔들린다. 그게 바로 오로라란다.


찬바람 속에 모자를 여미며 빛이 더 밝아지기를 기다렸지만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그 빛은 배가 샌드네스왼에 입항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항구의 불빛에 묻혀 사라졌다.

애걔, 겨우 이게 오로라?


내 눈에 희뿌옇게 보인 그 빛을 촬영한 사진엔 연한 녹색의 오로라가 찍혀 있었다.

카메라가 사람의 눈보다 오로라를 더 잘 잡는다더니 사실이었다. 오로라의 빛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보다 디지털카메라의 센서를 통해서 잘 잡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는 그림의 시대를 지나 광학과 컴퓨터그래픽이 우리의 눈을 현란케 하는 오늘날 강렬한 빛의 대조나 환상적인 CG를 가미하여 만들어진 오로라 사진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 별 감흥이 없다.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어느 기계의 힘도 빌지 않은 내 눈에 비친 날 것 그대로의 오로라를 보고 싶다.


그날 밤 스토크마르크네스(Stokmarknes)를 지날 때 두 번째 오로라 소식이 왔다.

오로라 크루즈란 이름에 걸맞게 이 배에서는 오로라가 뜨면 곧바로 안내 방송이 나온다.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온 사람들로 인해 갑판은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눈에는 단지 구름과 구별하기 어려운 희뿌연 빛만 보일 뿐이다.


저게 과연 오로라인지 마을의 빛이 구름에 반사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찍은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래도 이번 오로라는 앞의 것보다 좀 더 나았다. 북쪽 수평선에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가 넓게 퍼지더니 다시 연기처럼 모이는 순간 희미한 초록빛이 육안으로도 살짝 보였다.


오로라를 강도에 따라 10 단계의 레벨로 나누었을 때 이렇게 사람 눈에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가 레벨 2라고 한다. 레벨 2까지는 카메라를 통해야만 오로라인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레벨 3~4는 되어야 눈으로도 오로라인지 알 수 있다. 레벨 5 이상 넘어가면 비로소 사진 속의 오로라처럼 화려한 자태를 볼 수 있다는데 오로라는 언제 내게 그런 빛을 보여줄 것인지...


뿌연 연기 같은 빛이 화려한 오로라로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하늘의 별들이 마치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반짝거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북극성을 사이에 두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별빛이 찬란하다. 마치 천문대에 설치해 놓은 별자리 체험관처럼 이렇게 반짝이다니 내가 북극에 가까이 온 걸 환영이라도 받은 것처럼 불현듯 마음이 따스해진다.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여행작가'라 불리는 빌 브라이슨의 책, <발칙한 유럽산책>은 노르웨이 북쪽의 항구도시인 함메르페스트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북위 70도에 위치한 함메르페스트는 유럽 최북단의 도시이다. 그가 함메르페스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바로 오로라 때문이었다.


[나는 오로라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멀고 인적이 드문 곳의 삶은 어떤 것일까 늘 궁금하던 터라, 나중에 꼭 한번 직접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편안한 영국의 우리 집에서 위스키 한 잔을 손에 들고 지도책을 뒤적일 때는 아주 근사한 생각 같았다. 그러나 12월 말의 오슬로는 우중충했다. 길은 녹다 만 눈으로 질척해서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길을 골라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야 진창에 빠지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이쯤 되자, 나의 선택이 잘하는 짓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오로라를 보려면, 적어도 한 달은 잡고 오셔야 해요!” 교수님이 외쳤다.

한 달이라. 유럽에서 가장 춥고, 어둡고 오지인 곳에서 한 달...]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책을 읽으면서 왜 <한 달>이란 표현을 그냥 지나쳤을까. 한 달 만에 오로라를 보겠다고 각오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쩌자고 고작 2주 안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을까.


새벽녘 부두에서 처음 마주친 함메르페스트(Hammerfest) 항구는 설산과 마을이 함께 붙어있는 듯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배에서 본 시내 도로가 얼음으로 반짝거리는 게 무척이나 추워 보였다.

바짝 겁을 집어먹고 위아래로 온몸에 중무장을 하고 나섰지만 의외로 공기가 그리 매섭지 않다.

맞은편 전광판에 현재 온도가 쓰여있다. 기온은 0도.

북위 70도 39분에 위치한 함메르페스트는 위도상 세계 최북단에 있는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겨울에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


뾰족한 탑이 눈길을 끄는 시내 한가운데 루터교회 옆으로 수수한 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집과 붙어있는 것처럼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산이 단조로워 보이는 집들을 조화롭게 반짝이게 한다.


빌 브라이슨 '내가 이런 따분한 곳에 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역설적으로 그 도시에 꼭 가보고 싶었다. 단지 '오로라를 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빌 브라이슨은 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보면서 오로라를 기다렸다. 그리고 16일째 되는 날 저녁, 드디어 멋진 오로라를 만나게 된다.


[좁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섬광이 광활한 돔형의 하늘을 가로질러 휩쓸고 지나가더니, 비행운처럼 그 자리에 걸렸다. 때로는 별똥별처럼 반짝이며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하게 빙빙 돌기도 했다. 파이프에서 나른하게 뿜어 나오던 담배 연기처럼 말이다. 오로라는 때때로 서쪽에서 환하게 명멸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는 장난이라도 치는 양 뒤쪽에서 순식간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오로라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 계속 빙글빙글 돌거나 몸을 비비 꼬아야 했다.]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오로라를 본 다음날 빌 브라이슨은 미련 없이 함메르페스트를 떠난다.

무언가를 소망하며 정처 없이 기다리고, 그 소망을 이룬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그의 모습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는 엄청나게 매혹적이었다. 그에게 오로라는 그저 ‘한 번만 보고 싶은’ 광경이었을까?


태양을 못 본지 어언 일주일.

아직도 ‘제대로 된 오로라’를 만나지 못한 나는 노르웨이의 마지막 마을인 시르케네스(Kirkenes)까지 항해를 계속한다. 배 위에 내 마음을 싣고.

러시아와 만나는 국경 마을 키르키네스는 영하 11도, 쨍한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길가의 가로수는 하얀 눈꽃에 덮여있고 사람들은 간이 눈썰매를 끌며 장을 본다. 이제 낮의 길이는 불과 2시간 정도로 줄어들었다.


키르케네스 주변 지역은 1826년 현재의 국경이 정착되기 전까지 노르웨이-러시아 공동 지구였다. 지금도 이 도시의 모든 이정표에는 노르웨이어와 러시아어가 함께 쓰여있다. 두 나라의 생활상과 문화는 그저 이웃 마을이라 느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국경에는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국경의 문은 닫혀 있다. 철조망 너머 언덕 위에 러시아의 국경 초소가 보인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와 붙어사는 러시아 변방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호기심이 든다.


키르케네스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은 얼음으로 만든 이글루 호텔에서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인기가 좋아 겨울철에는 예약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쾌적한 얼음 호텔이 아니라 황량한 벌판에서 보는 오로라라도 좋다. 제대로 된 오로라를 볼 수만 있다면. 그러나 함메르페스트에서도, 키르키네스에서도 결국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로라가 출현하는 지역인 북극권에 들어선 다음에도 오로라는 커녕 오로라 관찰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눈, 비와 짙은 구름이 번갈아 나타나는 날을 보냈다. 하루 종일 하늘은 뿌옇다가 비나 눈이 흩날렸다. 눈비가 그쳐 희미한 여명 속에 설산과 도시를 볼 수 있는 순간은 길어야 하루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후티루튼 크루즈 배에는 편안히 의자에 앉아 창밖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파노라마실이 있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나 오로라를 감상하라고 만들어놓은 파노라마실에 앉으면 컴컴한 유리창에는 조명 빛에 반사된 내 얼굴만 휑뎅그렁했다.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창문에 코를 박고 별빛을 찾아보아도 하늘은 무심하기만 했다. 이러다 오로라를 아예 못 보는 건 아닐까?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세 번째 오로라는 항해 열흘째만에 찾아왔다.

종착지 키르키네스에서 유턴하여 출발지인 베르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로르빅(Rorvik)을 지날 무렵 자려고 누웠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로라다! 서둘러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뛰어나갔다.


이제는 무엇이 오로라인지 알겠다. 도시 불빛을 받은 뿌연 빛과 달리 오로라는 별과 함께 나타났다.

뿌연 하늘 사이 V자로 북쪽 하늘이 열리고 북두칠성을 속에 품은 채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었다.

살짝 녹색 빛이 돌기는 하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회색빛에 가깝다.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오로라는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며 점차 녹색 빛을 띠는 듯하다가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직도 오로라를 보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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