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오로라 (2)
오로라는 빛이다. 영어로는 ‘북극광’이란 뜻의 ‘노던 라이트’(Nothern Light), 북쪽 하늘에 나타나는 빛이다. 태양이 밝은 낮에는 볼 수 없는 빛, 구름을 뚫을 수 없는 빛이다. 오로라는 다른 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센 오로라가 아니고는 도시에서 오로라를 보기는 어렵다. 도시의 불빛이 워낙 오로라의 빛보다 강렬하여 오로라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별을 잘 보기 위해서 불빛이 없는 곳을 찾아가듯, 오로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인공의 빛이 없는 곳을 찾아야 한다. 특히 붉은빛의 오로라는 어둠에 내 눈이 완벽하게 적응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슬란드 북동쪽의 미바튼(Myvatn) 호수 주변은 섬 전역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곳이다. 멕시코 만류가 몰고 온 비구름은 섬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원지대에 가로막혀 눈과 비를 뿌려대고는 산 북쪽에 살포시 자리 잡은 미바튼 호수까지는 거의 넘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호수는 강수량이 많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오로라를 보기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 되었다.
날씨가 나쁘고 해가 짧은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관광도 비수기에 속해서 많은 호텔이 문을 닫는다. 옥빛 호수와 눈 덮인 화산을 바라볼 수 있는 미바튼 호수 남쪽에 이 지역에서 겨울철에 유일하게 숙박이 가능한 셀 호텔(Sel Hotel)이 있다.
후티루튼 크루즈에 동승해서 선내 오로라 강의를 진행했던 영국의 천문학자 존 메이슨 박사가 최고의 오로라 호텔이라며 추천한 곳이었다. 그는 ‘아이슬란드 다른 곳에서 오로라를 못 봐도 여기선 볼 확률이 크지’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미바튼 호수에 도착한 그날 밤, 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둥그런 보름달을 보면서 맑아진 날씨에 기대감이 커졌지만 오로라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보름달 밝은 빛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에 드디어 오로라가 ‘터졌다’!
오로라가 나타나자마자 J는 호수에 반영된 오로라를 촬영하겠다며 차를 몰고 호숫가로 내려갔다.
나는 "어차피 오로라는 하늘에 있는데, 호숫가에서 보는 오로라나 호텔에서 보는 오로라나 다 그게 그거 아냐?" 하면서 그냥 숙소에 남아 오로라를 보기로 했다. 호수 건너 서쪽 지평선에서 동쪽 지평선까지 머리띠 모양의 오로라가 둥근 호를 그리며 연둣빛 다리를 놓았다. 오로라 오벌 아래에서는 오로라가 동쪽과 서쪽을 이으면서 나타난다, 처음엔 강력한 한 줄 띠로 시작해서 고운 두 줄, 그러더니 미세한 갈래로 갈라지면서 한밤중 몇 시간 동안 오로라 다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북쪽으로 창을 낸 내 방에서도 오로라가 보였다.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오로라는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과도 같았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프랑스 할머니 가비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열 살배기 손주를 데리고 왔던 작년엔 제대로 오로라를 보지 못해서 올해 혼자 다시 왔다는 것이다. '오로라를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는 가비 할머니는 오로라를 보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호수와 어우러진 오로라의 풍경을 담기 위해 수 km 떨어진 곳에 있던 가 있던 J가 고대하던 붉은 오로라가 나타났다며 내게 문자를 보냈다. 붉은 오로라는 녹색의 오로라 위에 나타나는 것으로, 색깔이 연해서 보통 때는 보기가 어려운 희귀한 오로라다.
문자를 받자마자 붉은색 오로라를 보기 위해 가비 할머니와 함께 호텔 앞마당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내 눈에는 초록색 오로라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빨간색은 없어. 전부 녹색인데”
“여긴 완전 빨간색. 붉은색이 점점 짙어지고 있어.”
“어디? 어느 방향이야?”
“서쪽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하늘의 정중간을 가로지르고 있어. 어두운 데로 가서 봐.”
“흑흑. 주변에 조명이 넘 많아. 어디로 가야 하지?”
“또 터졌다, 터졌어. 와우!”
이날 밤 내가 본 오로라와 그가 본 오로라는 하나이되 같지 않았다. 호텔의 조명 때문에 오로라를 제대로 보기엔 사방이 너무나 밝았다. 호텔 식당 불빛은 한밤중까지 환히 빛났고, 호텔 옆집 현관에는 형광등이 밤새 밝혀져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빈집이라도 밤새 현관에 불을 밝혀야 한다는 지방의회 조례라도 있는 듯, 건너편 호숫가 문 닫은 호텔에서도 현관의 불빛은 반짝였다. 나는 불빛을 피해 어두운 곳을 찾아 헤맸지만 한밤중에 사방이 얼음판 투성이인 데다 미끄러져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낯설고 외딴곳에서 무작정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그날 밤 내 생애 처음으로 붉은빛 오로라가 하늘에 떴지만 나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편한 호텔에서 오로라를 감상하려다가 만나기 어려운 붉은 오로라를 볼 기회를 놓쳐 버렸다.
천체를 관측하는 사람들은 이를 ‘빛 공해’라고 부른다. 천문대를 설치할 때 빛이 없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보름달 아래에서도 약한 오로라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인다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도 제대로 오로라를 보려면 빛이 없는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물론 아주 강력한 오로라가 뜨면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볼 수 있다지만 그래도 불빛 없는 어둠 속 오로라의 선명함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
빛에 약한 북극의 빛 오로라.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는 나에게 소중한 만남을 허락했지만 나의 게으름과 판단 착오로 충분히 그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향했다. 또 다른 오로라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