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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로라 하면 역시 옐로나이프

캐나다의 오로라 (2)

by Bora

2013년 무렵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빌리지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이후 한국인들이 물꼬를 텄고 중국 관광객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오로라를 보는 방법은 동서양이 다르다.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빌리지에는 서양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아주 가끔씩 커플이나 개별 여행객이 합류할 뿐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온 이들은 빌리지에서 오로라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차를 빌려 ‘빛 공해’를 피해 오로라를 찾아다니는 적극적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패키지여행으로 온 관광객들은 오로라를 보지 못할 경우 여행사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자기가 선택하여 온 여행자들은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이번에 패키지여행으로 온 우리들은 사흘째 밤까지 전혀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나흘째 되는 밤. 이 밤이 지나면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로 돌아가야 한다.

밤 9시, 셔틀버스를 타고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했다. 자정이 되어도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그나마 구름층이 옅어 보름달이 희미하게 보이는 게 작은 희망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날이라 단체 여행객 중에 단 한 사람 빼고는 모두들 연장 신청을 했다.


밤 1시, 셔틀버스가 시내로 돌아가길 원하는 한 명을 태우고 떠난 직후 드디어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타난 건 레벨 2가 될까 말까 한 희미한 오로라였다. 이미 온몸으로 오로라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은 육안으로는 확인도 되지 않는 희미한 오로라를 카메라로 촬영해 보면서 그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 모른다. 한 30분이 더 흘렀을까? 날이 점점 맑아지면서 서쪽 하늘을 제외하고는 하늘이 거의 열렸다. 보름달빛이 눈밭을 비추고 별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잠시 후, 오로라의 춤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띠 모양의 형태로 시작했다. 아! 무지개다리 모양이 내게 허락된 오로라의 전부인 건가 싶던 순간, 갑자기 오로라의 현란한 춤이 시작됐다.


동에서 북에서 남에서, 아직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서쪽 하늘을 빼곤 동에서 번쩍, 북에서 번쩍 하는 식으로 온갖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연기에서 불꽃 모양으로, 가느다란 선에서 춤추는 너울로, 커튼을 펄럭이다 문득 사라지는가 싶으면 다른 쪽에서 곡선을 그리며 솟구친다.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오로라의 향연에 계속 고개를 있는 대로 젖히다 사람들은 아예 눈밭에 누워 버렸다.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오로라를 따라 꽈배기처럼 온몸으로 함께 춤추기 시작했다. 눈을 통해, 내 마음속으로, 가슴속으로 오로라가 가득 채워진다. 현실의 오로라는 너무나 빨라서 눈으로 보고 따라가기만도 바쁘다.


이번에 함께 오로라를 보러 온 단체 관광객 중에 우리 모두 '꼬마'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아가씨가 있었다. 작년에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는 대신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시급 3천여 원의 스마트폰 파는 일을 하면서 1년간 돈을 모아 오로라를 보러 온 당찬 아가씨다. 몸집은 작아도 가장 부지런히 사진도 찍고, 모든 활동에 열심이었던 '꼬마'는 생애 첫 해외여행이기도 한 이번 오로라 투어에서 오로라를 보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 보겠다 했었다. 그동안 핸드폰 가게에서 판촉 알바를 하며 여름이면 너무 더워서, 겨울이면 손이 시려 힘들었는데 그 고생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며 눈에 눈물이 반짝였다.

“이젠 괜찮아요. 내가 오로라를 보다니! 여기 오길 정말 잘했어요.”

환한 웃음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꼬마의 불투명한 미래에 앞으로 오로라는 큰 격려가 되어줄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 수 있는 버팀목이 될 거라 믿는다.

칼바람은 없어도 하늘이 열리며 다가온 차가운 고기압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대지가 얼어붙기 시작한다. 영하 20도를 넘어섰다. 이렇게 추워야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1월의 영하 30도~40도 추위에서 오로라를 정신없이 보다가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시간이 넘어서면서 손발이 꽁꽁 얼고 볼이 얼얼해지기 시작한다. 온몸도 얼어붙었다. 오랜 갈망으로 충분히 준비된 사람들에게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첫날 오로라를 만났다면 아마도 감동은 적지 않았을까? 오로라를 보며 사람들은 그저 행복해 보였다.


이렇게 2013년 극대기의 오로라를 찾는 여정은 화려한 오로라의 노래와 함께 마무리됐다. 그리고 나는 오로라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동안 스코틀랜드 등 고위도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면 하늘을 살피며 오로라를 기다리느라 날밤을 새곤 했다. 만나지 못하는 오로라를 갈망하면서.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극대기가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한번 오로라 체이서가 되어 제대로 오로라를 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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