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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
Nov 21. 2024
오로라를 찾아서... #5
북극권으로 들어가다
노르웨이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후티루튼(Hutigruten) 선박회사의 연안여객선인 트롤피오르 호는 겨울이면 오로라 크루즈가 된다.
배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오로라가 뜨면 선상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로라는 북극권 지역에 뜬다. 북극권(Arctic Circle)이란 북위 66도 위쪽의 지역을 말한다.
북위 66도는 한대와 온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아래 지도의 파란색 점선 안쪽이 북극권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Arctic_Circle
북극권에선
하지 무렵인 여름에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동지 무렵인 겨울에는 내내 해가 뜨지 않는 흑야가 계속된다.
백야라면 알래스카에서 만난 적이 있다.
여름의 알래스카에서는 새벽녘에야 해가 졌다가 서너 시간 후면 도로 밝아졌다.
밤 11시가 되어도 환해서 밤늦은 걸 모르고 다니다가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쫄쫄 굶은 적도 있다.
낮이 길어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움직이니 나중에는 몸이 지쳐왔다.
북극권의 겨울에 만나는 흑야는 생각과 달랐다. 밤시간엔 물론 깜깜하지만 낮이 특이했다.
겨울철 노르웨이에 와서 나는 지평선에 가깝게 지나가는 태양 말고 하늘 높이 뜬 해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계속될 거라 생각한 나에게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아스라한 여명은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베르겐을 떠난 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어서자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눈에 덮인 산맥이 시야에 들어왔다.
10시 무렵 붉은 여명이 구름을 곱게 물들인다.
떠오른 태양은 중위도 지역에서처럼 이내 고개를 들어 그 빛을 내쏘지는 않는다. 그저 아주 낮은 각도로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남쪽 방향으로 이동할 뿐이다.
오전 11시 반까지도 여명이 이어졌다.
여명에서 황혼에 이르기까지 내리꽂는 햇빛도, 눈을 파고드는 강렬한 광선도 없이 태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북극의 낮 동안 그 빛을 부드럽게 펼쳐준다.
베르겐 항을 떠난 배는 올레순(Alesund)과 트론하임(Trondheim)을 지나 나흘째 되는 날 새벽 드디어 북극권에 들어섰다.
다행히 올레순에서 짐을 찾으면서 모든 건 제자리를 찾았다.
북극권의 도시 외르네스(Ørnes)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20분. 새벽빛이 마을을 어슴푸레 비춰준다.
이 새벽빛이 두 시간씩 지속
되
니 세상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다.
마을 뒤에 겹겹이 이어지는 산들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마을은 비에 젖어 촉촉하기만 하다.
북극권에 들어서는 날, 북위 66도를 통과하는 순간에 선상에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펼친다.
이 의식을 위한 준비물은 뜻밖에도 얼음이 가득 든 양동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으로 분장한 사람이 등장하더니 국자 한가득 얼음을 퍼서 사람들의 목덜미에다 대고 붓는다.
갑자기 등줄기에 쏟아지는 얼음 세례에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모두 흥겨워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북극권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어서 작은 잔에 담긴 독주를 마시면서 각자 소원을 빌게 되는데,
대부분의 승객들은 항해 중
멋진 오로라를 만나게 해 달라는 소박한 소망을 얘기했다.
배 위 갑판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도 있다. 점점 급강하하는 북극권의 기온에서 자쿠지 목욕은 색다른 경험이다.
북위 66도 선을 지나 북극권에서 처음으로 기항하는 항구는 보되(Bodø) 항이다.
꽤 멀리 북쪽으로 올라왔는데도 사방에 얼음이
꽁꽁
얼어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항구의 밤 풍경은 마치 봄바다처럼 보인다.
바람 역시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불어온다.
북극권에서도
고기잡이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
따스한 바닷물.
이 난류를 타고 연어, 대구, 청어, 명태 같은 물고기들이 북극해 가까이까지 거슬러 올라온다.
그러나 차가운 북극 고기압을 밀어내고 따뜻한 저기압을 몰고 오는 이 북대서양 난류는 오로라 관찰의 천적이나 같다. 오로라는 맑은 하늘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권에 들어온 지 이틀째. 배는 트롬소(Tromsø)를 향하고 있다.
구름이 짙어서인지 어제보다 더 어두운 느낌이다.
정오가 가까워지는데도 먼동이 트기 전의 잿빛 하늘.
설산의
하얀빛은 더욱 깊어지고 마을은 눈으로 덮여있다. 북위 69도.
이곳의 하늘 역시 짙은 잿빛이다. 구름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듯 아래로 내려앉아 수면에 닿을 듯하다.
그 사이로 얼어붙은 동토의 땅이 구름 사이
에
잠깐씩 얼굴을 내민다.
구름과 산꼭대기의 경계는 모호해서 마치 산 위에 구름이 녹아있는 듯하다.
잠시 하늘이 밝아지길래 서둘러 갑판 위로 나왔더니
짙은 안개가 몰려들어 또다시 잿빛으로 바뀐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오로라는 없다.
베르겐 항을 떠난 지 닷새만에 후티루튼 크루즈
배
는 트롬소 항구에 도착했다.
러시아
지역을
제외하면 북극권에서 가장 큰 도시인 트롬소는 '유럽 오로라 관찰의 수도'로 불린다.
캐나다의 옐로나이프와 노르웨이 트롬소는 오로라를 보기 위
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양대 도시다.
전 세계 대학 가운데 최북단에 있는 트롬소 대학은 오로라 연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배가 이 '오로라의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난데없이 앞을 볼 수 없는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눈보라는 그칠 줄을 모른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가장 큰 기대를 갖고 찾아온 트롬소.
‘북극권의 파리’이자
'
북극 탐험의 수도
'
라 불리는 트롬소의 세찬 눈보라는 내 마음까지 얼어붙게 했다.
눈보라가 잦아든 뒤에도 잿빛 구름 속에 감싸인
트롬소는 오로라를 향한 쉽지 않은 여정을 예감케 한다.
북대서양 난류로 인해 존재가 가능한 북극권의 도시들은 바로 그 난류 때문에 겨울 동안 흐린 날이 대부분이고, 오로라를
찾아 헤매는 우리에게 끊이지 않는 좌절과 갈망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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