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 Oct 24. 2024

오로라를 찾아서

1. 나는 왜 오로라를 쫓는가

하늘에 갑자기 녹색 커튼이 드리워지더니 춤추듯 너울거린다. 부드러운 빛으로 흩날리며 쏟아지는 별과 함께 반짝인다.


가느다란 연기에서 불꽃 모양으로, 굵은 선에서 춤추는 너울로, 펄럭이던 커튼이 문득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른 쪽에 나타나 곡선을 그리며 솟구친다.

천상의 아름다움이 꿈결처럼 온 하늘을 떠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먼 북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책 <먼 북소리>의 첫 장을 펼치면서 읽은 첫마디가 내 가슴을 울렸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마흔을 되돌아본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고, 남편이 새로 시작한 일들은 아이엠에프 사태의 여파로 나까지 꽁꽁 옭아매버렸다.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40대를 지나 쉰을 넘긴 어느 날 오로라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한 번뿐인 인생, 안 가본 곳은 세상 어디든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게 평생의 꿈이다.

나의 꿈 한 자락이 오로라에 살짝 걸쳐졌다.

마침 태양 활동의 극대기이기 때문에 오로라를 보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했다. 

오로라는 대략 11년을 주기로 활동이 왕성해진다.


지난번 오로라 극대기였던 2013년 전후하여 우리는 오로라를 좇아  북극권을 헤매고 다녔다.

노르웨이의 해안에서, 아이슬란드의 호숫가에서, 그리고 캐나다 내륙의 숲 속에서 다양한 오로라의 모습이 내 눈을 스쳐 지나갔다.


보기 전에 생각한 오로라와 실제로 보고 난 후의 오로라는 서로 닮았으되 어느 하나 같지 않았다.

오로라는 멀고 먼 하늘 위에 떠 있었으나 대지의 자연과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났다.


세상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오로라는 무작정 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결정은 나의 몫이 아니라 온전히 오로라의 몫이었다. 태양과 지구가 도와줘야 가능한 하늘의 뜻이었다.


영상으로 촬영된 오로라를 다시 돌려보면 무척이나 느려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오로라는 너무나 빠르고 화려하여 그저 눈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따라기에도 벅찼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걸, 직접 보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오로라 극대기를 지나 기나긴 침체기이어졌던 지난 십 년 사이 우리는 스코틀랜드에서 밤새 뜨지 않는 오로라를 하염없이 기다려보기도 했고, 북극권을 지나는 비행기 창밖으로 오로라를 보려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태양 활동의 극대기가 돌아왔다. 

그 사이 세월은 흘러 우리는 둘 다 자유로워졌다.

약 11년의 주기로 태양 활동이 활발해지는 지금 우리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이번 주기가 지나면 다음번 극대기는 둘 다 70을 훌쩍 넘게 된다. 시간의 자유는 여전하겠지만 우리의 몸이 마음대로 따라줄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왜 오로라를 찾아다니가.

북극권까지 가는 길은 멀고, 물가는 천정부지에

만날 날보다 기다리기만 할 날들이 훨씬 많지만,

남들 다 잘 때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지만,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희망 고문 같은 오로라는

언제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한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빛의 향연.

한 번도 같은 모양이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자태.

반드시 맑은 하늘 아래서만 만날 수 있는 리도록 청정함.

그리고 무엇보다 천변만화하는 예측불가성이 나를 오로라로 향하게 하는 것 같다.


오로라가 춤을 추는 하늘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고,

나 자신이 미물이 되어 언제든 찾아올 대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사라지는 느낌.


하지만 진짜 이유는 오로라가 가까이에서는 볼 수 고 멀리 있어서, 찾아가기 힘든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오로라는 멀고도 먼 존재이다.

우리나라에만 가만히 머물러 있어서는 죽는 날까지 보기가 어렵다.

물리적인 거리로도, 현실적인 상황에서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천문 현상이라서 더 매혹적인 오로라의 세계.

막연히 오로라를 꿈꾸는 이들과 그런 꿈을 함께 하고 싶었다.


지구의 다양한 곳에서 오로라를 만나고 싶은 오로라 체이서 두 사람이,

11년마다 찾아오는 오로라 극대기를 맞아 당분간 오로라에 집중해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리의 경험과 지나온 길, 새로운 오로라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려 한다.


오로라의 신비로운 세계로 초대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