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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로라를 꿈꾸며 우아하게 가난해지기

by Bora

오로라는 남극과 북극에 가까운 고위도 지방에서 나타난다.

남극은 육지도 적고 접근이 어려워 오로라를 보기 힘들다. 그래서 북반구의 북미 대륙과 유럽이 우리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나와 남편 J는 지난 오로라 극대기였던 2013년 무렵, 오로라를 대표적 관광 상품으로 자랑하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캐나다의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었다.


북극권의 나라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이며, 모두들 살고 싶어 하는 나라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적지 않다. 특히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어찌 보면 형제와도 같아서 기후와 역사, 인구밀도와 언어까지 닮은 꼴이다.


북위 60도가 넘는 두 나라 사이에는 멕시코 만류가 흐른다. 북극에 가까우면서도 노르웨이 해안과 아이슬란드의 1월 평균 기온이 좀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기온은 온화하지만, 겨울철의 흐리고 변화무쌍한 날씨는 두 나라의 특징이다. 하루에도 비와 눈, 우박, 바람, 구름이 오락가락한다. 날씨의 변덕스러움은 섬나라인 아이슬란드가 단연 노르웨이를 능가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날씨가 바뀌고, 바람도 만만치 않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우산이 필요 없다고 한다. 어차피 우산을 써도 비를 피할 수 없으므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역사적으로도 한 뿌리나 마찬가지다. 아이슬란드어는 노르웨이어의 옛 언어에서 생겨났다. 9세기 무렵 노르웨이 바이킹이 무인도 아이슬란드를 발견한 이후 수천 명의 노르웨이인들이 그 땅에 정착했다. ‘아이슬란드’라는 이름도 노르웨이 탐험가 플로키 빌예르다르손이 섬에 떠 있는 유빙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아이슬란드의 공기 속에는 어딘가 노르웨이의 냄새가 남아 있다.


오로라의 나라들은 모두 인구가 적다. 사람은 적고 삶은 넉넉한 데다, 가을부터 오로라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오로라의 나라로 발걸음을 내딛기 어려운 이유는 ‘물가가 비싼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유럽 3개국의 물가는 차원이 다르다. 콜라 한 캔이 5천 원, 버스를 한 번 타면 만 원이 넘는다.


여행자에게 체감되는 물가는 환율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크로네에 단순히 200을 곱하면 우리 돈 환산치가 나온다. 콜라 세일가가 20 크로네면 4천 원. ‘헉’ 소리가 난다. 노르웨이를 떠나는 마지막 날, 나는 20크로네(4천 원) 동전을 들고 음료수 하나 사 먹으려 매장을 한참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호텔로 돌아와 수돗물만 마셨다. 4천 원으로 우유 한 팩도 살 수 없는 나라에서 다행인 건, 물이 공짜라는 점이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에서는 어디서나 수도꼭지의 물을 그대로 받아 마셔도 된다. 깔끔한 물맛이 그나마 숨통을 틔어준다.


“그렇게 비싼 나라에 가다니, 돈이 많나 봐요?”

언젠가 가까운 동료들과 ‘어디에 돈 쓰는 게 가장 아깝지 않은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멋진 옷을 즐겨 입는 선배는 옷값만은 아깝지 않다고 했고, 피부에 관심이 많은 후배는 피부관리와 화장품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했다. 아이의 교육비는 아깝지 않다는 친구도 있었고, 맛있는 음식과 고급 식당에서의 기분전환을 즐기는 동료도 있었다.


나는 여행 가는 돈이 아깝지 않다. 옷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세일하는 옷만 가끔 사고, 마트보다 싼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은 그대로 내지른다.


항공료는 싸냐고? 사나흘도 아니고 몇 주씩 여행을 가면 경비는? 게다가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북유럽에서?

그래서 가성비를 생각하며 결정한 방법이 노르웨이에서는 숙식과 교통이 해결되는 오로라 크루즈, 아이슬란드에서는 렌터카 여행, 캐나다에서는 옐로나이프의 패키지 투어였다.

독일의 몰락한 백작 폰 쇤부르크는 유럽의 부유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겪은 경험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물려받은 유산 한 푼 없이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실업자가 되었지만, 자신이 접한 상류층의 이야기를 통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제시했다. 가난해도 자신을 우아하게 느끼는 방법은, 자기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생활양식을 척도로 삼지 말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폰 쇤부르크는 말한다.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이고, 더 원하면 가난하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지구의 끝까지 찾아가는 오로라 여행은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삶을 풀어가는 방식은 각자의 몫이다. 만족이라는 것은 ‘현재’에만 일어날 수 있다. ‘언젠가 미래엔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영원히 만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책에서 본 아랍 격언이 있다.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움직일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

나는 나의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며, 오늘도 조금씩 우아하게 가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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