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교관이 되기까지
미국에서 귀국 후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기관에 보직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장교와 부사관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교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교관이란 쉽게 말하면 '선생님'과 같다. 전쟁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군의 간부라면 공부하고 또 공부를 해야 한다. 결국, 군의 선생님인 교관은 학생들에게 전문성을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내가 맡은 과목은 전투에서 적의 위협과 의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사람 마음도 알기 어려운데, 적의 행동과 패턴을 분석하여 그 본질을 아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내 역할이었던 것이다.
교관으로 보직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격을 획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교에 보직을 받고 약 3개월 동안 연구를 하고 장군, 대령 선배님들 앞에서 수업을 해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교관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과 함께 교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보람을 가지고 수업을 계속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관의 능력에 따라 반기별로 최우수 교관 1명과 우수 교관 2명씩 선발한다고 했다. 갑자기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도 한번 해볼까?"
그런데 내가 본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 계급은 대위, 그리고 나머지 교관들은 소령~중령, 그리고 20년 이상 경력을 가지신 군 교수님도 수두룩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1년 차에 나는 우수 교관이 되지 못했다.
아니, 후보에 가지도 못했다.
당시 우수 교관을 꿈꿨지만 신세를 한탄하던 선배들과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모두는 자신이 처한 여건이 좋지 않았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선배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생각 없었어?" 침묵이 흘렀다.
다른 선배들은 여전히 여건을 탓하고 있었다.
"제가 부족하니 더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날 밤, 나는 비전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우수 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자신 있게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여건이 좋지 않은 것 같긴 하다. 미국에서 늦게 귀국하는 바람에 주요 과목을 맡지 못했고, 담임 교관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계급이 제일 낮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담임 교관을 해야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설문조사에 많이 이름이 나와야 후보에 오를 수 있다.', '내부적인 평판과 정치적 요소까지 모두 극복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월등하게 뛰어넘어야 한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의 인식, 다른 교관들이나 학생 모두가 감동하여 KO 할 수 있을 때까지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해야지.
'명불허전'을 마음속에 새기자.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2년 차에 나는 최우수 교관이 되었고 내가 속한 학과(학처)를 우수 학과로 이끌었다. 최우수 교관은 반기에 1명만 주어지는 영광된 자리였다.
나는 어떻게 우수 교관이 되었을까?
내 비전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우수 교관이 되었다. 노력의 결과 이루어진 성취라고 생각한다.
아웃라이어(outliers)..
통계학에서는 극단치를 말한다. 발생 확률이 극히 낮아 고려하지도 않는 수치이다. 그렇다.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아웃라이어였다. 타인의 인식 속에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과목을 맡게 되었고 수업 일시도 부족했다. 전임자는 수업 시간이 부족하여 조직 진단 시 보직 삭감까지 예상되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소령급 교관, 군 교수님들, 그 높은 분들과 함께 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작년 후반기 우수 교관 선발 결과를 보고 나의 약점이 무엇이었나? 이를 극복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분석하여 매진하였다. 그런데 노력에 운까지 따라왔다.
혁신을 추구하는 학교장님(★★)이 부임한 것이다. 학교장님이 바뀌고 전투발전과 TF(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함)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생겼다. 미국에 가서 선진 군사 교리를 배워온 나에게 학교장님은 직접 교범(군대 교재)을 쓰게 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했던 여러 날들.
교관도 하면서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고생했던 날들.
전투발전 제안에서 상을 받은 일.
브리핑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서 인정받은 일.
담임 교관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배출한 일.
한-UAE의 방산 협력의 일환으로 UAE(아랍에미리트) 군인들에게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되었던 일.
이 모든 노력과 작은 성취들이 모여 쟁쟁한 선배 교관들 사이에서 최우수 교관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일이 많다고 사람이 힘들다고 절대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도전 앞에 와 있다. 최고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절대 오만하지 않고 겸손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명품 브랜드가 되었으니 이에 상응하는 능력을 보여야겠다. 이전에 했던 방식이 아닌,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과 도전을 시도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느냐가 미래의 결과를 바꾼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 계기로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마인드셋, 태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는 스탠퍼드대학 캐럴 드웩(Carol S. Dweck) 교수가 2017년 '마인드셋(Mindset)'을 쓰기 3년 전인 2014년의 일이었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자신이 결정지을 수 없는 요소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운이라는 요소로 인해 시작점 역시 다르다. 하지만, 어떤 마인드셋을 갖느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처한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구별하고 하나씩 얻어간다면 어느새 운도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말했다. '성공은 환경, 시대, 기회, 문화적 배경이 만든 누적적 결과'라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그 공식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환경이 기회를 만든다면, 마인드셋은 그 기회를 현실로 바꾸는 힘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