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다시 일어설 순간을 기다리며
신경계 환자들에게
나는 신경계 손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당신의 고통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수많은 신경계 환자를 치료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날 발생한 갑작스러운 뇌 손상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충격 그리고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고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기에 그 마음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어떠한 말을 해줄 수도 없다. 하지만 때로는 환자 본인이 아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자. 이미 신경에 손상이 왔다. 예방하기엔 늦었다. 그렇다고 포기하란 말이 아니다. 신경 손상일지라도 회복이 가능하다. 완전히 회복을 못 하는 것이지,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손상 이후 급성기에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가장 회복력이 빠른 시기이다. 과거를 생각하며 연연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자.
두 번째, 자책하지 말자. 아프기 전 아쉬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하는 것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할 뿐이다. 후회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가져보자. 몸이 조금 불편해진 것뿐이다.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 포기하지 말아라. 충분히 재활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말자. 처음에는 병문안을 많이 오고 나를 걱정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 또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주변에 연연하지 말고 재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뇌는 학습을 통해 새로운 신경 경로를 만들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세 번째, 치료사를 괴롭혀라. 물리치료사도 오랜 재활 과정에서 그들 나름의 감각이 무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치료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꾸준히 표현하고, 나의 의지를 잊지 말고 전달하라. 당신을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도록 치료사를 괴롭혀라.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네 번째, 상상 훈련을 하라. 재활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히 몸도 마음도 힘든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재활을 받지 않는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나? 누워서 과거를 되새기기보다는, 상상 훈련에 힘써보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길이 될 수 있다. 마비된 쪽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집중하라. 이 부위는 신경을 전달하는 척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신경이 전달되는 속도가 느려 움직이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하다. 나는 환자를 처음 만날 때,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지 가장 먼저 확인한다. 움직일 수 있다면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다시 걷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며 치료에 임한다. 그러니 움직이지 못해도 괜찮다. 지속적으로 상상하고 머릿속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라. 이 훈련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꼭 해보라. 일 년 후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다.
다섯 번째, 만족하지 마라. 어느 정도 보행이 가능해지고 재활 기간이 오래되면 재활이 지겹고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재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운동을 통해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뿐,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분명히 달라져 있다. 이미 재활을 통해 변화한 내 몸에 익숙해지면서 그동안의 발전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활을 중단하면 급속도로 나빠짐을 느낀다. 보통 사람들도 건강관리를 위하여 운동한다. 일반 운동에서 재활 운동으로 바뀐 것뿐이다. 이제 재활 운동은 평생 가져가야 할 내 건강관리라고 생각하자.
여섯 번째, 무작정 많이 걷지 마라. 급성기에는 환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많이 걷게 함으로써 보행 자체에 대한 경험을 주려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된 뒤에는 아니다. 무작정 많이 걷게 된다면 관절에 무리만 갈 뿐이다. 뇌 손상 환자는 경직을 항상 가지고 있으며, 뇌손상 환자의 재활은 경직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근육의 수축이다. 병원 바닥과 일반 아스팔트 바닥은 완전히 다르다. 아스팔트 바닥은 평지가 아니다. 매우 울퉁불퉁하다. 밖으로 나가서 걸어본 환자들은 알 것이다. 균형 잡는 것이 불안해지면서 긴장감이 몰려온다. 그리고 경직은 심해진다. 무작정 많이 걷는다고 경직이 감소하지 않는다. 걸음의 횟수와 시간을 따지기보다 정상보행 방법을 생각하면서 걷는 한걸음이 당신에게 더욱 소중하다.
일곱 번째, 치료사를 믿어라. 1년 이상 재활 기간을 겪었다면 나만의 운동루틴이 생길 수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운동만 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치료사가 당신을 평가하고 말해주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최대한 치료사의 말을 받아들여라. 무엇보다 가장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물론 당신에게 열정적인 치료사여야 한다.
오랜 시간 뇌 손상으로 재활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병원마다 지침은 다를 수 있지만 6개월 혹은 1년 또는 최대 2년까지 치료집중기간으로 정해 재활을 받는 횟수와 시간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치료 시간이 줄어든다. 건강심사평가원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그러하다. 하지만 난 5년이 지난 환자도 10년이 지난 환자도 기능적 회복이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 나 또한 오래된 환자를 치료하여 일상으로 회복시킨 경험도 많이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충분히 지금보다 좋아진다. 조금 느릴 뿐이다. 긴 시간 동안 지치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재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꼭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환자들의 재활을 함께 만들어가는 치료사들도 힘내길 바란다. 현장에서 힘들지만 당신의 열정이 아픈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환자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함께 바라보는 기쁨이 있으니 열정과 자부심을 항상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