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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비가 당신을 말해준다

상품은 어떻게 나를 대신하는가

by June H


#1


우리는 상품 속에 살고 있다


지금, 화면에서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상품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앉아 있는 의자, 양팔을 올려둔 책상, 내가 있는 공간, 심지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화면까지도. 인간이 만든 거의 모든 것은 상품이다. 우리는 상품 속에서 살아가고, 상품을 통해 일상을 꾸려간다.


그렇다면, 상품이란 무엇일까? 상품은 단순히 사고파는 물품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어떤 기능이나 역할 등을 대신해 주는 것을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내가 가지고 있는 무선 이어폰은 ‘소리를 나 혼자만 듣는 행위’를 대신해 준다. 즉,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연결된 기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싶을 때,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그 소리를 나만 들을 수 있게끔 환경을 세팅하는 수고로움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이 밖에 다른 상품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무언가를 대신해 주는 것, 그것이 곧 상품이다.





#2


상품의 진짜 의미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와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어떤 것을 의미 있게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을 기호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모든 상품은 곧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점으로부터 각 무선 이어폰 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모든 무선 이어폰은 본질적으로 ‘소리를 나 혼자만 듣는 행위’를 대신해 주는 점에서는 같지만, A라는 사람은 애플의 에어팟을, B라는 사람은 삼성의 버즈를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중국의 QCY라는 기업의 제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각 상품으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부가적인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번엔 내가 관찰자 입장이 되어, 타인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상황이라고 하자. 누군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는 기종과 관계없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에게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기호다.


그런데 A라는 사람을 보니 애플의 에어팟을 끼고 있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애플이 추구하는 부가적인 기호를 떠올릴 수가 있다. 그래서 '아, 저 사람은 기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멋으로 여기며, 정제되고 감각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기호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B라는 사람을 보니 삼성의 버즈를 끼고 있었다. 이를 보고 나는 삼성이 추구하는 기호를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아, 저 사람은 기술의 성능과 기능을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 그래서 스펙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기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에 대해 애플은 기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멋으로, 삼성은 기술을 드러내는 것을 멋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방향성을 광고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들의 상품에 연결시켰다. 따라서 미디어를 통해 이 연결을 반복적으로 접한 소비자는 두 기업의 어떤 상품을 지각하는 순간, 그들이 유도한 방향으로 부가적인 기호를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애플의 제품은 '나는 기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멋으로 여기며, 정제되고 감각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기호가 된다. 그리고 삼성의 제품은 '나는 기술의 성능과 기능을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스펙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기호가 된다.





애플의 에어팟 광고


상섬의 버즈 광고





#3


나를 표현하는 기호(Sign)는?


우리는 어떤 브랜드가 어떠한 브랜드 철학을 내세우고 있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품이 어떠한 기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매 순간 스마트폰과 같은 다양한 디지털 매체에 연결되어 수많은 광고를 접하기 때문이다. 광고로 인해 어떤 상품에 연결된 기호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컨대, 파타고니아 재킷을 입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지속가능성과 자연을 중요시하는 가치 지향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상품을 고를 때, 이 부분을 염두하고 상품을 구매한다. 따라서 내가 지금까지 구매한 상품들의 본래적 사용 가치를 제외하고, 그 상품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적인 기호들을 면밀히 따져본 후, 그 기호들의 공통점을 찾으면, 내가 현재 외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만약 그 가치를 추구하는 내가 마음에 든다면, 그 가치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상품을 찾아서 소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겉모습과 내면의 태도 사이에 자연스러운 일관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타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이와 달리, 내가 지금까지 소비를 통해 추구해 온 가치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찾아, 그와 연결된 기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해 보는 것이, 나의 삶과 선택을 일관된 흐름으로 이어주는 출발점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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