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 알베르토 망구엘
텍스트를 읽고자 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표면적으로 단순히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 나와 세상,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공감을 느끼며 연결되고 싶어서, 내 생각 또는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관심을 가지는 주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얻거나 지식을 넓히고 싶어서, 읽는다. 내 경우에는, 보통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얻고자 할 때, 누군가의 텍스트를 읽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아르헨티나 출신 캐나다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가를 "단서와 암시를 통해 글이 완곡하게 말하는 것들을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는 사람." 독서를 "언어의 규칙 안에서 하나 이상의 의미를 구출하려는 독서가의 노력을 반영하는 생산적인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본질적으로 독서는 텍스트를 읽는 행위이며, 독서가는 그 텍스트를 읽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욕구로부터 시작된 것이든 간에, 읽기의 핵심은 텍스트를 통해 나와 외부를 잇는 매우 적극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즉, 읽는다는 것은 내가 가진 언어로 글쓴이의 언어를 해석하는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다. 비유적으로는 텍스트를 만들어낸 창작자가 놓아둔 징검돌을 따라, 언어의 한계를 건너, 그와 연결되는 여정으로 표현해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오늘날의 읽기는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바탕으로 텍스트를 완성하는 작업이며,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미술은 거의 모든 것을 그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창작자가 완성된 의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하지 않고, 작품을 접하는 사람 각자의 감각과 해석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현대미술로 분류되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텍스트를 읽는 것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 환경과 같은 텍스트 외적인 요소에 따라 단지 비유적으로만 읽힐 수 있음으로 어떤 이상적인 정답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움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텍스트가 쓰인 의도를 파악하려는 좁은 관점만을 고집하는 경우에 그렇다. 현대미술로 분류되는 작품과 마찬가지로 텍스트 또한 의도가 모호하거나,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단순 읽기만으로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독자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고, 읽기의 흐름이 끊어질 수 있다.
나에게 그러한 '읽기 힘든 글'은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 상의 글과 댓글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텍스트는 읽는 사람을 고려하여 의미를 담아낸 것이기보다는 어떤 주제에 대해 떠오른 '생각의 파편들'을 텍스트의 형식을 빌려 표출한 것에 더 가깝다. 또한, 커뮤니티의 글과 댓글은 대개 특정 집단의 맥락 위에 쓰이기 때문에,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텍스트 그 자체가 불친절하고 피로하게 다가올 수 있다.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커뮤니티라는 공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공감을 느끼며 연결되고 싶다는 것이 주된 욕구로 작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새로운 관점을 얻고자 커뮤니티의 글과 댓글을 읽으려 하면, 나의 경우처럼 의도가 없는 텍스트에서 억지로 의도를 찾으려 애쓰는 모순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리해 보자면, 읽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텍스트가 읽기를 시작한 나의 욕구 또는 동기와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커뮤니티의 글과 댓글에 피로감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독자로서 브런치스토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온 경험과, 브런치를 통해 20편의 짧은 글을 연재해 온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브런치스토리는 무엇보다도 어떤 주제에 관하여 다양한 시각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글을 읽는 사람에게 참 좋은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스토리는 ‘작품이 되는 이야기’라는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처럼 보기 좋게 담아낸다. 덕분에 글을 읽는 독자 역시 편안하게 텍스트에 몰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브런치스토리는 전적으로 독자 친화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성 때문에라도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자연스럽게 독자를 의식하게 된다. 나 역시 글을 작품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단순히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소비하기 위한 ‘생산물’로서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나의 기록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상품’으로서 글을 쓸 때에도, 항상 독자를 고려하며 글을 쓰게 된다. 그렇기에 브런치스토리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서로를 의식하며 텍스트의 의미를 완성해 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이 이 매체를 계속 찾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자 쓸모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