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의 휴식
회색빛 세상.
찬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비가 머금고 있는 자신의 성정과 성향대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축축하다. 젖는다. 차갑다. 번거롭다. 낮고 무거운 분위기가 시야를 감싸고 주변을 덮는다. 비에 응답하는 1차적 감성이며 첫인상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 견해다.
창 밖의 멀리 보이는 숲과 가까이 있는 나무들이 비를 맞고 서 있으니 마음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 비는 저들에게 갈증을 해소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은혜의 단비이자 통쾌하게 들이켜는 청량음료일 것이다. 모처럼 행하는 대청소의 시간일 터, 먼지를 털고 육신을 씻어내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리라. 지금 즐거운 향연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면서 생각을 고쳐 본다.
비가 오니 따뜻한 커피 그리움이 저절로 감돌아 식탁의자에 앉아 커피를 내리고 있다. 실내에서 감촉하는 바깥 풍경은 제법 운치 있고 커피와 함께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관점을 고치고 보니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무겁고 가라앉았다,기 보다는 차분하고 평온하다. 적당한 비는 센티멘탈 정서를 마음속 여백에 소복소복 부어서, 바람 넘나드는 감정의 골다공 부위를 견고하게 다져준다. 커피를 컵의 작은 세계에 채우고 채우듯이...
왠지 커피를 칭찬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온전히 비 때문이다. 비 탓이다.
일상에서의 커피란? ...
5분의 길고 긴 휴식이다.
사막처럼 메말라 가는 현대인들의 생활에 수분과 유분을 공급하여 트러블 없이 촉촉한 나날을 운영해 가도록 도와준다. 걷다가 다리 아프면 잠시 앉아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의자 같기도 하다. 뙤약볕을 피하게 해 주는 그늘 같기도 하고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한 모금 냉수 같기도 하다. 언제나 매력적인 맛을 자랑하는 커피는 독특한 풍미와 개성으로 사람들 입맛을 장악하고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해맑은 표정과 담소를 제공한다. 여유와 리듬을 추가해 주는 브레이크 타임과 동의어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는 더욱 그러했지만 재택 상황에서도 잔에 담긴 커피를 보면 나의 뇌는 휴식시간인 것을 자동으로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 같다. 그 순간 나의 신체는 확연하게 편안하고 느슨해진다. 즉시 '아! 좋다. ' 모드로 전환한다.
애호가들에게 커피의 정서적 역할과 기여는 상당하다고 본다. 매일 먹는 밥처럼, 과일처럼 마니아들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식량이 되었다. 하루 한, 두 잔의 커피는 건강에도 좋다,는 보고서 역시 자주 접할 수 있으니 애호가들이 염려도 자제도 해야 할 이유 없다.
비 오는 날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커피를 애호하지만 과하게 마시지는 않는다.
오늘따라 특이하게 비와 커피에 사로잡혀서, 오랜만에 비의 차분함에 매료되어 비 아닌 커피예찬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커피사랑에 부작용이 없기를 바라면서.
온정의 커피와 냉정의 비를 함께 노래하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하바네라'가 소나기처럼 우렁차게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선율이 이례적으로 강렬하다. 의미 있는 암시라도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