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플래그였던 것들

5년 일찍 알아차릴 수도 있었겠다

by 서제

병원 예약이라는 급한 일을 마친 후, 나는 홀로 책상 앞에 앉았다.


본격적인 수능 공부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던 방학이건만, 공부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대신 두 개의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기만 했다.


나는 내 질환을 일찍 알 수 없었을까?

나는 왜 척추측만증이었던 걸까?


네이버 카페 속 다른 환자들은 대개 초등학생, 중학생 때 처음 진단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떤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면 척추 측만의 징조였을지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해 가기 시작했다.


아래의 기록은 내가 3년 간 생각해 온 몇 가지 징조들, 소위 플래그 모음이다. 원인보다는 증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문가에 의한 상관관계의 인정을 받지 않은 내용, 즉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한 내용이 다수 존재한다.)


- 유튜브 홈트레이닝 영상 중 특정 동작을 수행할 때면, 흉부에서 기이한 숨소리가 났다.

- 중학생 시절 수영을 다닐 때, 강사는 내게 비대칭이 있다고 말했다.

- 거울로 나의 뒷모습을 보면, 우측 날개뼈가 튀어 올라와있다. (익상 견갑)

- 고등학교 1학년, 급식실에서 내 뒷모습을 본 친구는 내 어깨 높이가 눈에 띄게 다르다고 말했다.

- 숱하게 찍어온 증명사진들을 사진사가 보정을 할 때면, 언제나 어깨부터 조정하기 일쑤였다.

- 백팩을 한쪽으로 메고자 할 때면, 왼쪽은 가방이 항상 내려왔으나 오른쪽 어깨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맥락으로 에코백, 크로스백을 한 방향으로만 멜 수 있었다.

-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서서히 소화 능력이 저하되었다. 장 문제는 전혀 없었으나, 음식을 먹고 나서는 더부룩함과 상부의 불편감이 심했다. 밥을 먹고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어 걷거나 유산소 홈트레이닝 영상을 곧바로 하는 습관이 들었다. (나의 척추 변형 정도를 생각하면 이는 측만보다 식이에 대한 사고가 끼친 영향이 더 클지 모른다.)

- 선명한 11자 복근이 있었을 때에도, 숱한 코어/복근 홈트레이닝 영상을 수행할 수 있었음에도, 나는 학교 체력 검사 중 윗몸 말아 올리기 동작을 단 1회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유사하게 필라테스에서 수행하는 롤 업 동작을 도무지 반동 하나 없이 복부만을 이용해 올라올 수 없었다.


여러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이미 내 비대칭 체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를 척추측만증과 연결 지을 생각은 안 했을 뿐이었다.


두 번이나 받은 의심 소견서였기에, 적극적으로 나의 허리를 대해주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 분명히 있었다. 과연 언제부터 소견이 있었던 걸까, 언제부터 무시를 해버렸던 걸까. 궁금한 마음에 학교에서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를 쭉 꺼내 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측만이 없었으나, 초등학교 6학년과 그 이후의 결과지는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척추측만: 있음
종합소견: 척추측만증 의심. 정형외과 내원 바람.


내가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기 무려 5년 전부터, 국가가 해주는 건강검진은 나의 척추에 경종을 계속 울려주고 있었다. 단순히 몸을 앞으로 접어 날개뼈의 높이 차를 보는 그 간단한 검사만으로도 진단받을 만큼, 측만의 시작은 꽤 오래 된 일이었다.


속상함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조금 더 일찍 병원에 가자고 할걸. 병원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엄마인 걸 알아도, 굳이 사서 병원을 가는 일을 만드는 것 같았더래도 한 번 더 우길걸. 감정은 하염없이 밀려들었고, 나의 눈물은 대학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이틀간 마를 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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