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측만증이 가져온 인생 첫 대학 병원 진료
눈물범벅이던 이틀이 지나가고, 대학병원 진료일이 다가왔다. 서울로 떠나기 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것만 같았다.
오전 7시 7분 기차. 어머니와 둘이 KTX를 타고서 10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용산역에 도착했다. 두 번의 환승을 더 거쳐 겨우 점심시간에 송파의 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 하나 가겠다고 교통수단 5개를 거쳐 가야 한다는 데에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매체로만 접하던 지방 의료 불균형을 체감했다.
진료는 오후 1시였기 때문에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서 해물덮밥을 먹고서 움직였다. 대학병원 진료, 생각보다 너무 많은 절차를 필요로 했다. 다행히 종이에 진료 전 준비사항을 모두 나열해 주어 혼란은 없었지만 위압감이 들었다.
다들 종이 한 장을 들고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분주한 모습이 마치 컨베이너벨트 위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거부할 새가 없었다. 나도 그 벨트 위에 올라 타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어린이병원 안에 위치한 척추측만증센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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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한 일은 자동 계측실에서 신장과 체중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159.4cm에 44.9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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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는 진료 전 상담을 진행했다. 문진실에 계신 의료진께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 후, 많은 질의응답이 오갔다. 기본적인 개인 정보부터 시작해 오게 된 계기, 이전 병원에서의 진단 내용, 통증 여부와 초경 일자, 평소 생활 습관과 운동까지… 교수보다 더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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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는 새로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영상의학과로 이동했다. 병원복을 입고서 오래 대기했다. 점심을 일찍 먹었기에 나름 다른 환자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환자들이 있었기에 진료 시간 전에 찍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대기했다.
결국 진료 시간을 넘기고서야 내 차례가 되었다. 크롱이 그려져 있는 카메라를 마주한 채, 턱부터 골반까지 아우르는 기다란 엑스레이를 정면과 측면, 총 2장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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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야 진료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영상의학과뿐 아니라 진료 또한 밀려 있었기에 나의 진료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수련 과정에 있었을 의사가 나의 엑스레이 사진 위에 세 개의 선분을 그어 흉추와 요추의 cob angle을 측정했다.
흉추 37.1에 요추는 30 언저리. 이틀 전 종합병원에서 측정한 것보다는 각도가 작았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척추이겠지만, 상급 병원에서 받은 각도의 숫자가 그나마 덜 심각하다는 데에서 작은 위안을 받았다.
각도를 보고서 조금 더 진료실에 앉아있다가, 드디어 다른 진료실에서 건너 온 교수가 내 앞 의자에 앉았다.
체감 상 30여 초의 만남이었다. 엑스레이를 보고서는, 성장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수술이나 보조기는 필요 없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간결한 답을 끝으로 그는 빠르게 다른 환자를 보러 옆 진료실로 떠났다.
진료 후기를 숱하게 읽었기에 진료가 무척 짧을 걸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몸으로 겪으니 허무했다. 많은 환자들을 보기 위한 교수 나름의 전략이겠지만,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특별히 처치할 도리가 없는 몸이기에 진료가 빠르게 지나갔던 것일 테다. 워낙에 찾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가 그저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환자 1에 불과했다는 감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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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나가고서는 다시 각도를 측정해주었던 의사가 들어왔다. 나는 1년마다 병원에 방문해 경과를 관찰하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재진 예약을 하고서 진료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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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병원에서 수납을 마친 후, 스포츠건강의학센터로 이동했다. 이 센터가 구로에 위치한 병원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는데, 일관된 운동 교육이 아니라 환자마다 서로 다른 척추 변형을 고려하여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설계해주었다.
정각에 시작되는 프로그램을 위해 30여 분을 기다리고서, 나의 척추 상태에 맞춰진 7가지 운동 모음을 차례로 배웠다. 홈트레이닝 영상에서 모두 한 번쯤은 보았던 동작들이었지만, 내 몸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어 횟수나 방법을 교정받았다.
미처 생각못한 운동이라 청바지와 가디건이라는 복장은 전혀 적절치 못했지만, 30분인지 50분인지 짧았던 운동을 마치는 데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따지면 인생 첫 PT였다. 그래서 이김에 평소 하던 코어 운동 동작들도 점검받고, 필라테스를 다녀도 괜찮겠다는 조언도 받았다.
비용은 건강보험 미적용 5만 원. 딱 1:1 PT 수업료만큼이었다. 나와 엄마는 동작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힌 종이 파일철을 들고서 병원 일정을 마무리했다.
내 건강 문제로 대학 병원에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깁스 한 번 한 적 없이 건강하게 살던 나에게 대뜸 주어진 척추측만증이라는 질환이 많이도 난감했다. 마음고생 몸고생 돈고생을 할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걱정할지 알기 때문에 눈물은 자꾸만 찾아왔다.
그러나 우울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애를 썼다. 다음은 병원에 다녀온 후 디지털 일기장에 남겨둔 내용의 일부이다.
사실 저는 불행 중 다행에 속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1. 성장기에 측만증 사실을 알게 되어 치료 방안이 존재합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손쓸 방법이 줄어듭니다.
2. 그동안 아주아주 조금씩이나마 해왔던 운동으로 허리 아픔없이 지내왔음을 생각했습니다.
3. 저는 굉장히 유연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치료 효과를 기대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4. 치료 비용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5. 걱정하고 계속 지켜봐줄 가족이 여럿 있습니다.
6. 방학에 알게 되어, 곧바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대학병원 예약이 빠른 날짜로 가능했습니다.
7. 서울에서 묵을 곳이 존재해 부담이 적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가봅니다.
이제 다른 유명한 대학병원 진료까지 4개월이 남아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곁들인 일상을 살아가며 잠자코 11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