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되던 겨울
가장 유명하다던 교수를 찾아 대학병원을 옮긴 후, 나는 척추측만 각도의 악화를 막기 위해 보조기 처방을 받았다.
만으로 열일곱, 성장은 거의 끝나가는 4단계. 성장이 끝난 성인에게는 보조기도 수술도 좀처럼 권하지 않는다던데, 애매한 경계선에 있었던 건지 나는 밤 보조기를 처방받았다.
이전 대학병원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받지 않았던 터라 보조기가 약간의 덤터기 처방이 아닐까 반신반의했으나… 교수가 오랜 시간 설명을 해주었고 더 잘 알려진 교수니까 한 번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병원과 제휴를 한 건지, 보조기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의 차량이 곧장 병원으로 어머니와 나를 픽업하러 왔다. 이상한 데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독산역에 위치한 건물에 도착했었다.
젊은 여성 한 분과 중년 남성분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들은 교수가 쓴 종이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보조기 상담을 진행했다.
보조기 금액의 일부를 선결제를 마친 후, 나의 체형에 딱 들어맞는 보조기를 만들기 위해 체형을 측정하는 공간으로 함께 이동했다. 쌀쌀한 초겨울이었지만 딱 붙는 내의 한 장만을 입고서 난방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측량을 하는 데에 불편함이 들었다.
철 막대기들에 나사가 연결된 요상한 기구 사이에 들어가서는, 일어났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했다. 중년의 남성이 이리저리 막대기로 내 갈비뼈와 골반을 꾸욱 눌러가며 기구 틀을 조정했다.
내가 ‘교정당해야 하는 몸’으로 규정되는 공간에서, 어른 셋 사이에 선 나의 모습에 조금의 수치심이 들었다. 그러나 여성 분께서 분위기를 풀어주시려고 스몰토크를 계속해서 걸어왔기에 어색함과 불쾌함이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았다.
우리는 보조기가 제작되기를 2-3주 기다렸다.
보조기 하나 챙기자고 생으로 서울에 올라오면 돈이 아까웠겠지만, 때마침 서울 소재 대학에서 주최한 실험 캠프 일정이 잘 맞아 들었다. 나는 고3 시작 전 모처럼의 긴 서울 여행에 보조기 수령을 얹는 일정을 만들어냈다.
실험 캠프 일정 이후, 우리는 보조기 회사에서 왔던 연락에 맞추어 금산역으로 함께 이동했다.
완성된 보조기는 조금 낯설었다. 앞선 방문에서도 보았던 여성분께서 착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직접 착용해 보고 권장되는 착용법을 안내받았다.
벨크로를 붙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물감이 들었는데, 차차 벨크로를 꽉 조여가며 빨간 선까지 조여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 들었다.
적어도 7-8시간 이상은 착용하기를 바랐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오고서는 많아봤자 6시간 내외의 수면 시간을 가져오던 나였기에, 이 부분은 단념했다. 그래도 종종의 늦잠에는 면죄부가 생겼겠다- 생각하며 초록색 보조기 가방을 들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보조기를 들고서 어머니는 먼저 기차로 내려가고, 나도 곧이어 며칠 후 본가로 내려가 보조기 착용을 시작했다.
처음 보조기를 밤에 찼던 날에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적응을 위해 벨크로를 붙이지도 않았는데 등이 자꾸만 배겼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나 적응의 동물이었던 건지, 일주일 동안 점차 익숙해지고 차츰차츰 벨크로도 더 많이 조인 채로 잠에 들 수 있었다. 한두 달 사이 나는 빨간 선까지 당긴 채 잠에 들 수 있는 몸으로 바뀌었다.
보조기가 잘 맞춰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1월에 보조기를 수령한 후 2월에 구로의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보조기를 착용한 채 찍은 엑스레이는 꽤 희망적이었다. 요추의 측만 각도는 0도로 사라졌고, 흉추 또한 20도 넘게 줄어들었다.
보조기만 성실히 잘 착용해 뼈가 그 사진처럼만 굳는다면 더는 바랄 게 없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약 18개월을 밤보조기를 착용하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