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양을 줄였다
시상하부성 무월경, 달리 말해 호르몬 이상에 의한 무월경은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식이 조절을 한 여성들에게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의식하고서 '나 다이어트 중이야.'한 적은 없다. 그러나 식단 또는 식습관의 조절이라는 다이어트의 좁은 정의를 생각하면, 나는 몇 년째 다이어터였다.
내가 처음 식습관을 조절한 나이는 열두 살이다. 어느 날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150cm도 안되던 키에 50kg가 코앞이었다. 스스로 통통하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여태 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앞자릿수가 주는 공포를 처음 마주했다. 그날부로 라면과 탄산음료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라면은 한 달에 두세 번 먹는 게 전부였고, 탄산음료 외에 마실 거리가 워낙 다양했기에 끊는 데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이것 정도야, 하며 나를 조절하는 데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때까지는 조절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한, 가벼운 식습관 변화였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점점 나는 체중의 증감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이에 맞추어 식생활에 제한을 하나둘씩 늘려나갔다. '나 몇 kg 뺄 거야!' 다짐은 없었더래도, 체중 유지 혹은 감량은 내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기본이고, 심할 때는 하루에 한 번씩 체중계에 올라갔다. 소수점 아래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식습관 통제로 치환되었다.
가장 먼저 통제한 것은 식사량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 통통~뚱뚱한 체형에 걸맞은 식사량을 갖고 있었다. 떡잎부터 남달랐는지, 오늘날까지도 여섯 살 때 짜장면 한 그릇에 탕수육까지 맛있게 먹던 나의 과거가 친인척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중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전반적으로 식사량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어머니께 밥을 조금만 달라고 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추어 먹는 반찬의 양도 줄어들었다. 고깃집에 가서 밥 하나 먹는 게 거뜬했던 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항상 어머니와 밥 한 공기를 나눠먹기 시작했다.
차츰차츰 줄여나가다, 급격히 식사량을 줄인 두 번의 시기가 있었다. 먼저, 코로나19로 생활 습관이 급변했던 열여섯에는 끼니 수 자체를 3끼에서 2끼+간식으로 줄였다. 미라클모닝을 하겠답시고 저녁 8시~9시에 잠들어 새벽 4~5시에 일어났다. 이에 맞추어 오전 7시에 아침을 먹고, 학교에서 급식은 잘 먹지 않고(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들이랑 간식을 먹고서, 오후 4~6시 사이에 이른 저녁을 먹었다.
끼니 수가 줄어들어 먹는 양이 주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화장실을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 할 정도라, 친구가 변비로 고민이라며 며칠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고 말했을 때 '원래 그렇게 화장실에 자주 가는 건가?' 하며 속으로 놀랐었다. 먹은 게 워낙 없어서 몸이 음식을 있는 족족 흡수하려고 애썼던 게 아닐까.
그런 식사를 이어가다 막 열일곱이 되던 겨울, 의도치 않게 식사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탄수화물 = 살찌는 거'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점점 자리 잡고 있던 어느 날, 도화선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모르게 소화 불량이 시작되었다. 식사를 한 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미칠 것 같았다. 식사 후 산책을 하지 않거나 유튜브에서 일명 급찐급빠 홈트 영상을 따라 하지 않으면 흉부가 지나치게 답답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건 밥, 빵, 떡과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이었다. 그중 면 요리는 유독 먹을 때마다 거북하고 체하기 일쑤였다. 하루는 그냥 토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답답할 거면 뱉어버리고 말지. 그러나 만약 토한다면 그때는 정말 통제 가능한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화장실에 가는 대신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유튜브 5분짜리 홈트 영상을 4번을 반복했다. 그날부로 면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지난 4년 간 이어져 외식할 때 1인분을 다 먹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마 '면 = 밀가루 덩어리 = 정제 탄수화물 = 나쁜 음식'이라는 생각에 뇌에서부터 거부한 걸지 모르겠다.
그렇게 열일곱에 시작된 소화 불량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소화제가 상비약 1순위였을 정도로 일상에 지장을 주며 스무 살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이 소화 불량으로 인해 자꾸만 체하다 보니, 나는 점차 식사량 조절뿐 아니라 '무엇을 먹는지'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체하지 않는 음식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