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 강박에 기인한 급식 거부자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못 먹는 음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생활, 강박 덩어리와 다름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식이 강박이 생겨날 때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등교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집에서 내가 원하는,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쟁여 놓고 살았다. 내 식사에 ‘먹지 말자’ 리스트가 침범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급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영양사 선생님의 설계 아래 성장기 청소년을 위한 음식들이었다. 맛도 있었고, 종류도 다양했으며, 생야채와 갖가지 나물들이 언제나 있던, 알찬 식사였다. 그러나 그 당시 ‘먹지 말자’ 리스트를 실컷 늘려놓았던 내게 급식은 그저 곤란한 음식들에 불과했다. 맛이 있음에도 먹으면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그런 음식.
참치밥버거에 군만두, 과일주스가 나오는 날이면 이거 완전 탄수화물 폭탄이 아니냐는 말을 친구에게 건넸다. 치킨마요덮밥에 감자채볶음, 김치전과 과일주스가 하루에 몰아서 나오는 날이면 감히 영양사 선생님이 영양 성분 비율을 고려한 것이었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한 숟갈 한 숟갈 밥을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체중에 어떤 영향을 줄지, 내 지방이 얼마나 늘어날지, 근육 합성에는 얼마나 도움이 안 되는지… 송송 떠오르는 생각들에 피로와 불쾌감을 느꼈다.
급식을 거부한 이유에 음식의 종류만 있던 것은 아니다. 학기 초반에는 내 양을 가늠도 잘 못했다. 자율배식대에서 밥을 나의 급식판에 풀 때면, 남들만큼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 공기만치의 밥을 챙겼다. 그 밥의 양을 보고서 급식실 여사님들은 내게 넉넉히 반찬거리를 주셨다.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인 마음가짐이 너무 깊숙이 자리 잡았던 건지, 꾸역꾸역 밥을 다 먹으려 애쓰는 날이 이어졌다.
또한 그렇게 먹으며 시간을 보낼 장소인 급식실이 내겐 견디기 힘들었다. 가장 높은 학년부터 들어가는 급식실은 1학년이 왔을 때 언제나 가득 찬 풍경만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서 재잘재잘대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목소리는 내 귀에서 왱왱 자꾸만 울리곤 했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하며 먹을 때에도, 귀가 자꾸 먹먹하게만 느껴졌다. 소음에 민감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처 대처하지 못했던 열일곱이었다.
먹기 꺼려지는 음식에 과한 양, 시끄러운 급식실이라는 3콤보에 나는 자꾸만 체했다. 보건실에 어떤 소화제가 구비되어 있는지 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없지 않나? 그래서 2학기부터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점심을 아예 거르고 집에서 간단한 과일을 싸 와 그걸 식사로 삼았다. 그러나 식사량이 아무리 적대도 그 양은 종일 머리를 쓰는 학생의 허기짐을 채우기에는 모자랐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만 되면 밥을 한가득 먹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서 어머니는 점심 도시락을 싸 주기 시작했다.
메뉴는 단순했다. 대체로 닭가슴살 소시지 하나에 냉동 고구마였고, 이따금 아침 식사로 먹은 볶음밥이나 오므라이스를 챙겼다. 아침에 어머니나 내가 가공식품들을 뜯어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도시락통에 담아 학교에 왔다.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 교실에는 소시지 냄새가 솔솔 났다. (지금 생각하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한동안 아침 식탁에는 아빠의 도시락 가방과 나의 도시락 가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도시락 생활은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정확히는 고등학교 2학년 11월을 끝으로 더 이상 내게 자연 생리는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