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같던 무월경으로 병원에 가다

고3의 인생 첫 산부인과 방문기

by 서제

식이 강박이 극에 달했던 고2 가을, 생리가 끊겼을 때 나는 별달리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워낙 초경이 늦었기에 아직 생리가 내 몸에 자리잡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입시에 전념했던 기간 동안 생리를 하지 않는 내 몸에 오히려 만족감을 느꼈다. 생리통으로 조퇴와 결석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공부에 방해가 될 만큼 아픈 요소가 없다는 데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찝찝함도 없고 귀찮음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이대로 쭉 지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게 무월경은 축복이었다.


그다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채 언젠간 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고3에 들어서고는 급식을 먹기 시작했고, 하루에 규칙적으로 네 끼를 먹는데다가 간식까지 챙겨 먹어 체중도 늘어나고 강박도 잠시 줄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달달한 디저트도 곧잘 먹으니까, 쌀밥 잘 챙겨 먹으니까 언젠가는 하겠지- 하는 마음.




그러나 나는 입시가 끝날 때까지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더욱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면서도 생리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자궁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병원에 가보라고 걱정을 했으나 별달리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무월경, 생리불순, 문제점, 원인… 자궁내막이 얇아져 암을 비롯한 여러 부인과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말이 많았다.


그래, 지금의 내 상태가 비정상적이긴 한가 보다. 뭐라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가졌다. 그래서 우선 스트레스 없이 입시 끝난 고3 겨울을 즐기다 2024년 2월, 내 의지로 산부인과에 발을 디뎠다. 태어나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산부인과에 가자고 말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꼭 가야겠냐며. 초경이 늦었으니 그럴 수 있지 않냐며. 고3 이전에도 잠시 어머니께 걱정하는 투를 내비치었는데, 그때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고 ‘나중에’ 가자며 미루었다. 나 혼자였더라도 갔어야 할까?




내가 찾아간 병원은 산과 위주로 진료를 보는 곳이었다. 내가 간 곳뿐만 아니라 내 동네에 있는 가까운 산부인과들은 모두 산과 중심으로 보였기에, 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방문했다. 그나마 여자 의사분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갔다.


접수 후 문진을 하는데, 초경과 마지막 생리를 물었다. 나는 2020년 5월과 2022년 11월을 답했다. 차트에 기록하시는 분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놀란 모양이었다. 그렇게 드문 일인가? 생각하며 진료를 기다렸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 의사분이 앉아 있었다. 내 차트 속 마지막 생리 일자를 보시고서는 작은 소리로 투덜대셨다. ‘아니 2023년을 지금 잘못 적은 거야.’하시며. 그래서 정정했다. ‘아니요, 2022년 11월이 마지막이 맞아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눈이 잠깐 커지더니 의사분은 내게 혼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상황을 생각하면, 그분은 내게 혼을 낸 게 분명하다. 이때까지 뭐 하다 이제 왔냐고 차갑게 말했으니까.


급격한 체중 변화나 식습관, 스트레스, 운동 등 원인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내게 특별히 해당되는 건 없었다. 나는 당시 44~47kg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너무 빠졌다 싶으면 조금 더 먹고, 너무 쪘다 싶으면 조금 덜 먹으며 유지했다. 새벽, 아침, 점심, 저녁에 두유 따위의 간식을 먹으며 규칙적인 식사를 했었다.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았던 고3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주 2~3회 폴댄스를 하고 매일 30분 이상씩 걸었으며 가볍게 뒷산을 오를 때도 많았다. 이때는 내 탄수화물 적은 식단에 문제를 느끼지 않아 언급도 하지 않았다.


명확한 원인이 보이지 않자 일단 논의는 접고서, 의사분은 일단 초음파 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세탁이 제대로 되었을까-걱정되는 검진 치마를 찝찝한 채 입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묘하게 구린 자주색 의자에 앉았다. 다시는 앉고 싶지 않을 수치스러운 자세로 이리저리 내 자궁이 화면에 찍혔다.


그때의 화면으로부터 두 가지가 기억난다. 난소는 구멍 없이 무척 깨끗했다는 점, 그리고 자궁 내막이 굉장히 얇았다는 점. 다낭성은 아니었지만 내 자궁은 생리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의사분은 내막이 너무너무 얇다고 하시며, 유도 주사나 피임약을 통해 생리를 해야만 내막암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다. 인터넷에서 읽기만 하던 단어를 직접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나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가? 그때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몸의 이상이 내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니까.


의사분은 호르몬 검사 결과까지 본 뒤 약 처방을 생각해 보자고 하셨고, 그 길로 나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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