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 개강 메이트는 피임약

무월경으로 시작한 피임약 복용

by 서제

산부인과에서 호르몬 검사를 위해 피를 뽑은 지 하루가 지나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가 보통보다 너무 적으시고요, 이밖에 다른 특이점은 없네요. 가까운 시일 내에 내원하세요”


무슨 호르몬이라 했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일단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으니까 가서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지난 방문 때 본 여자 의사분은 결과를 모니터로 확인하시고서 말했다. 여성호르몬 수치가 완경기 수준, 즉 지나치게 낮다고. 그래서 우선은 6개월 간 피임약 ‘야즈’를 먹으면서 생리를 강제로 한 뒤 경과를 보기로 했다.


우선 3개월 치 야즈를 처방받아 약국에서 구입했다. 1팩은 24알의 연분홍색 정제와 4알의 위약, 총 28알로 이루어져 있다. 약에는 합성 에스트로겐과 합성 프로게스틴이 들어 있어 매일 일정한 시각에 한 알씩 먹으면서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는 원리로 작용했다.


분홍색 약을 하루씩 전부 먹은 뒤 흰 약을 2~3알째 먹던 날, 16개월 만에 생리를 했다. 속옷에 피가 내비치자 안도했다. 그래도 나, 약으로 조절이 가능한 수준이었구나- 하며. 약을 먹는 6개월 동안 꾸준히 생리는 약에 의한 주기에 맞추어 꼬박꼬박 나왔다.


IMG_2521 2.JPG


이것에 너무 안주해 버린 것일까? 나의 생활습관은 강박이 심했던 청소년기로 회귀했다. 약을 먹으니 생리에 문제가 없어 내가 통제하고 싶은 대로 통제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다시 ‘먹지 못하는 음식’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 때보다 더욱 문제였던 점은, 본가가 아닌 기숙사에 살기 시작하면서 외식을 점차 꺼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개강 후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점차 나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늘어났다. 과 동기를 비롯한 대학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데에 큰 에너지가 들었다. 식비 관리를 용돈과 과외 수입 선에서 스스로 해야 되면서 외식은 더욱 기피 대상이 되었다. ‘먹으면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사람들’과 ‘비싼 돈’을 주고 먹기 싫었다.


아침은 ‘천 원의 아침밥’ 사업으로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을 주로 냉동식품으로 해결했다. 한 학기 동안 랭킹닭컴 닭사장님이었다. 냉동 닭가슴살과 곤약볶음밥, 도시락 따위를 구입해 별다른 약속이 없을 때면 언제나 전자레인지로 식사를 차렸다. 본가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얼렸다가, 식사 때마다 닭가슴살 하나와 함께 녹여 먹었다.


물론 이런 식사로 모든 끼니를 채운 것은 아니고, 이따금 동기들과 학식을 먹거나 밥약을 나갔으며 햇반과 참치, 김, 유부, 두부, 달걀로 다채로운 식사 구성을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기본 설정이 닭가슴살과 고구마였기에, 한 달에 닭가슴살 20-30팩에 기타 다이어트용 식사로 나온 제품들을 10-20팩씩 꾸준히 구입해 먹었다.




생리가 피임약의 효과로 꾸준하게 나왔기에 나는 이 생활을 지속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추정컨대 피임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7화축복같던 무월경으로 병원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