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기복, 불안, 그리고 우울
무월경으로 야즈를 6개월 동안 먹으면서 생리를 꼬박꼬박 한다는 효과 외에 다른 작용이 어느 순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로 감정기복, 불안, 그리고 우울이었다.
이게 약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외부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한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할 도리는 없지만, 아무래도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는 우울감이 빈번히 느껴지는 대학 첫 학기를 보냈다.
학과의 상황이 뒤숭숭했기 때문에 외부 스트레스가 분명히 있었다. 개강 첫 주에는 전공 수업거부, 개강 6주 후에는 교양 수업거부가 학과 내 다수의 선택지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나 주변 동기들을 보았을 때나 본가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을 고려했을 때, 나는 필요 이상으로 이 사태에 힘들어하고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눈물의 역치가 아주 낮아졌었다. 수업 전후로 학교 사람들을 만날 때, 잡생각 없이 그 순간에 집중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있게 되기만 하면 툭 치면 눈물이 흐를 정도로 기분이 낮은 상태에 머물렀다.
그래서 사소한 무언가 하나라도 틀어지면 나는 어김없이 울었다. 기숙사 방에서든, 사람 없는 지하주차장에서든, 또는 강의실 건물의 계단에서든. 소리 없이 악을 지를 때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나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 펑펑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실은 통화를 할 때마다 울었던 것 같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걱정했고, 블로그에 우울감과 눈물이 묻어난 일기를 몇 주 째 올리자 친구들도 요즘 괜찮은 게 맞냐고 연락을 남겼다. 아무래도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처음에는 학과의 상황 같은 혼란을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기에, 내가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기에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5-6월, 조금 사태가 잠잠한 채 방치되려던 때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자 나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 이르렀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인가? 내가 이렇게 유리 멘탈을 가졌나? 나 약한가? 반 년동안 내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변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주목했다, 나의 피임약에.
여자들이 생리 즈음이 되면 감정기복이 심해진다던데, 나도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그렇다기에는 생리할 때뿐 아니라 한 달 내내 우울감이 잔재했다. 그렇다면 혹시 피임약으로 인한 호르몬이 변화를 준 것일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타인의 복용 사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애꿎은 약에 책임을 덮어씌우는 게 아닐지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피임약 복용 후 나와 같은 감정적 변화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복용을 시작한 지 세 달 만에 약품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흔한 부작용’에 감정기복과 우울, 불안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글자를 찾자 나는 안도했다. 나의 변화를 설명할 거리 하나를 찾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우선 처방받은 6개월 분을 복용한 뒤, 약을 그만 먹기로 결심했다. 의사와의 상의 없이 가족과 이야기를 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여름까지 본가가 아닌 곳에서 머무르며 대학 첫 학기를 약과 함께 마무리한 뒤, 나는 야즈 복용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