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끊자 다시 온 무월경

두 번째 병원, 두 번째 피임약

by 서제

무월경으로 인해 6개월 간 야즈 피임약을 복용했으나 부작용을 체감해 더 이상 먹기를 거부했다. 중단하고서는 감정기복과 우울, 불안과 같은 증세가 한결 나아졌다. 복잡했던 학교 상황을 어느 정도 체념했고, 학부생 인턴으로서 학교 연구실에 꾸준히 나가며 생활이 점차 안정화되어 간 것과도 연관이 있을 테다.


그러나 약을 먹지 않자 생리는 기가 막히게 바로 끊겼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변한 게 없었으니까. 체중도 체성분도 식습관과 운동까지 한결같았다. 약간의 강박적인 식습관과 운동은 자연스러운 루틴이라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고, 세간의 ‘갓생’에 가까운 생활이 이런 거라 생각했다.


90일 동안 무월경이 이어지자, 그날 바로 학교 근처의 산부인과를 예약했다. 처음과 달리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더 미루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변화가 없었으니까. 이대로면 계속 안 할 게 뻔해 보였으니까.



만으로 열아홉, 혼자 산부인과를 간 건 처음이었다. 랩실에사 일찍 나온 뒤 가을의 정취를 보며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척이나 쾌청한 날이라 더 우울했다. 좋은 날을 마냥 좋게만 보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행히 새로 방문한 병원의 의사분은 친절해 긴장은 이내 곧 사라져 솔솔 나의 이야기를 했다. 언제부터 자연 생리가 끊겼고, 언제 병원을 가서 무슨 약을 얼마나 복용했다가 끊었는지… 일련의 생리 연대기를 의사분께 브리핑하면서 복용 중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의사와의 상담, 호르몬 검사 없이 복용을 무작정 중단한 데에서 약간 표정을 찌푸렸지만, 부작용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겪는다고 말해 위안을 받았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우선 현재의 상태를 알아보고자 초음파 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진행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는 한결같았다. 약 9개월 전 병원을 찾았을 때 들은 말이랑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말했다. 자궁 내막이 너무 얇아 생리를 전혀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호르몬 검사는 채혈 후 이틀 뒤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를 하고서 일주일이 지난 뒤 병원을 다시 찾았다. 첫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지를 보여주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결과지를 내게 보여주며 볼펜으로 하나하나씩 설명을 해주셨다. 남성호르몬,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인슐린 저항성 등등 대부분의 수치는 정상 범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9개월 전과 같이 에스트로겐 수치는 완경기 여성의 수준만큼 낮았다.


생리를 하지 않는 기간이 늘어날 때 자궁내막암을 비롯한 부인과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의사분은 일단은 1개월 분의 피임약을 처방했다. 야즈로 인해 느낀 부작용을 고려해 의사분은 비슷한 성분이나 그 용량이 다른 약을 채택했다. 여성의 생애 주기에 맞추어 매일마다 먹는 약의 호르몬 양이 달랐다. 우선은 한 달 분을 처방받았고, 이와 함께 체중을 증량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 달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 들었을 테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피임약을 먹기 시작했다. 설명서가 50페이지에 달하는 클래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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