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는 음식이 늘어나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가리기 시작한 건 열여섯이었다. 전역한 오빠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음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당시 오빠는 식단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해 몸만들기에 몰두했다. 내게 오빠는 프로틴바, 닭가슴살 소시지, 저칼로리 소스에 대체당까지 선보이며 음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맛있는데 다이어트에도 좋은 음식들이라니. 냉장고의 오빠 음식들을 하나둘씩 뺏어 먹는 나를 보고는, 오빠가 이왕 식단 관리를 해볼 거면 Fatscret 어플(식단 기록 어플)을 써보라며 추천했다.
그 어플을 깐 순간부터, 식사는 내게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어플에 처음 들어가면 신장과 체중을 입력하고, 목표를 입력하게 된다. 빠른 체중 감량, 느린 체중 감량, 체중 유지, 느린 체중 증량, 빠른 체중 증량까지. 나는 목표 체중 45kg으로 느린 감량을 눌렀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활동량을 ‘앉아 있기’, 즉 비활동적이라 입력했기에 어플이 내게 쥐여 준 일일 섭취량은 고작 1200kcal 내외였다.
기록을 시작하면서 식사량에 대한 점검은 빡빡해졌다. 무게를 잴 수 있는 음식이라면 반드시 저울에 올려보았다. 밥 100g은 이 정도구나, 이건 몇 그램일까. 다 같이 먹는 음식에서 1인분의 양을 가늠하기 어려워 점점 조금 먹었다. 1200kcal을 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통제했다.
이 어플이 내게 강박의 수렁에 빠지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실은 총열량보다도, 도넛 그래프였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섭취 비율을 열량 기준으로 알려주는 이 그래프는 음식을 입력할 때마다 비율이 쑥쑥 바뀌었다. 어느 정도 비율이 좋을지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권장 비율은 굉장히 다양했으나, 다이어터를 위한 비율들을 조합해 탄수화물 40% 이내, 단백질 40% 이상, 지방 20% 이내로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식단 기록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다면 알 텐데, 생각보다 이 비율은 일반식(이 단어도 참 기이하다) 세끼에 간식으로 만들어내기 매우 힘들다. 탄수화물과 지방은 넘치기 일쑤고, 단백질은 의식하고 챙기지 않는 한 30%도 넘기기 힘들었다. 칼국수에 만두를 먹는 날이라면 그날 그래프는 도저히 수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먹는 음식의 종류를 하나 둘 통제하기 시작했다. 먹지 않는, 아니 먹지 못하는 음식이 늘어났다. 액상과당이 든 음료와 아이스크림, 젤리, 떡과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간식은 1순위로 나의 ‘식사’에서 지워졌다.
그럼에도 비율 맞추기는 참 어려웠다. 단백질 비율이 낮을 때면 일부러 소시지를 간식으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식사에서 밥을 점점 더 먹지 않게 되었다. 반찬과 요리 위주로 먹게 되었다. 죽과 전, 부침개를 꺼리기 시작했다. 과일 킬러였던 내가 과일을 끊었다. 하나 먹어보라고 하면, ‘밥 먹고 나서는 과일 안 먹을 거야.’ 말하며 거절했다. 지방은 조금만 먹어도 금세 도넛의 비중이 커지기 마련이라, 고기류를 닭가슴살을 제외하고는 싫어하게 되었다. 삼겹살은 절대 금물이었다.
하나둘씩 ‘먹지 말자.’ 리스트가 늘어났다. 독기가 있는 건지, 그만큼 체중 변화에 욕심이 있던 건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무언가를 내 의지로 먹지 않는 게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닭가슴살 소시지와 프로틴 보충제, 두유와 잎채소는 입에 무척 잘 맞았다. 평생 이거만 먹으래도 될 성싶었다.
그러나 피치 못할 이유로 리스트에 든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 스트레스를 주었다. 먹는 데에 죄책감이 들고, 이걸 먹으면 탄수화물과 지방 비율이 올라가겠지-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 강박의 행태는 기어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학교 생활이 끝날 적, 급식을 먹어야만 하는 고등학생 때 극에 달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