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할머니의 메일
그렇게 둘째 날이 지나고 셋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아침 6시쯤 부지런히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숙박비를 내려고 보니 호스트 할머니의 부재.
숙소까지 다시 오시는데 오래 걸린다기에
어쩔 수 없이 숙소 화장대에 있는 액세서리 함에
숙박비를 넣어두고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한 5~10분 뒤에 온 답메일은
‘아 앞으로 이 마인드로 순례길을 걸어야겠다.’하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길과 삶을 즐기세요.”
이 말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와서
어제까지만 해도 힘들기만 했던 순례길이
오늘부터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전날 구경하지 못한 마을도 보면서
그렇게 즐겁게 셋째 날 순례길을 출발했다.
역시나 비가 조금씩 왔지만 이 역시도
해가 나타났다가, 먹구름이 꼈다가
비가 내렸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하는
오락가락한 날씨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셋째 날부터는 산을 타기 시작했다.
둘째 날 걸었던 돌, 흙, 데크길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나무와 풀이 우거지는
산 길을 걷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순례길을 즐기려고 주변도 살피고
함께 걷는 순례자들을 궁금해하고
한국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비교해 가며 걸으니
발걸음이 훨씬 가볍고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탈리아 군인 아저씨를 마주쳤는데
그 후로 가게, 쉼터 등에서도 계속 마주쳐서
그냥 함께 걸었다.
서로 영어가 부족해도 열심히 의사소통을 했다.
어떻게 순례길을 걷게 됐는지 묻자
자신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왔다고 그래서
생일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 같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같이 식사도 하고 간식도 노나 먹으면서
대략 10km를 함께 걷고 목적지가 달라
아쉽게 헤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castelo라는 마을에 도착을 했다.
전날 수선했던 언니의 등산화는 결국 운명을 다해
마을에 있는 신발가게에 가서 새로운 신발을 하나 사고
마트 들려 먹을 음식을 구매한 후
새로운 알베르게인 산타루치아 성당으로 갔다.
여기서 셋째 날의 첫 고비를 맞이했다.
성당이기에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성당으로 올라가려면 100 몇 개의 계단을 이용하던지
푸니쿨라 비슷한 케이블카를 이용하던지 하면 됐는데
이용시간은 오후 5시까지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4:50분.
마트에서 정류장까지는 빠르게 걸으면 약 5분.
그래서 아픈 다리를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마지막 티켓을 구매한 후 성당에 도착!
성당에서 운영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가능했기에
수련회 온 느낌도 나고 좋았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마주한 다양한 풍경과
우연히 만난 외국인과 이런저런 대화들
맛있는 음식과 소소한 볼거리들이
셋째 날의 순례길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무엇보다 리타 할머니의 응원 메일이
오늘 뿐 아니라 앞으로의 순례길,
그리고 지나온 이틀의 순례길마저도
즐길 수 있게,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 벅차올랐다.
‘길과 인생을 즐겨라’
순례길 이후 내가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말이다.
내가 가는 길,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고되고, 힘들고, 재밌고, 행복하듯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즐기면서 조금 더 진실하게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
벌써 삼일차가 지났지만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앞으로의 순례길이 어떻게 펼쳐지든
나는 즐기기로 했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