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시간의 치열한 협상
조합이 언제 우리를 배려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상가 땅을 빼앗을 방법만 궁리하다가, 이제 와서 "좋은 결말"을 이야기하며 녹취를 하지 말자고 요청하는 모습이 의심스럽기만 했다.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지르던 이사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왜 늦게 상가를 사서 모두를 힘들게 하느냐!"
그날의 분노와 억울함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조합장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양보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3월 16일 미팅에 철저히 대비해야겠다 굳게 마음먹었다.
명탐정 건축사님과 나는 새벽 3시까지 통화를 이어가며 미팅 준비를 마무리했다.
우리의 노력과 결단이 결국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나는 희망과 결의를 다졌다.
회의 참석자 - 조합 측
아톰 조합장
정비업체 대표
정비업체 상무
회의 참석자 - 상가 측
박 하늘 총무
명탐정 건축사
준코 상가회장
조합장은 회의 시작에 앞서 ″오늘은 서로 사이좋게 회의하자″며 녹음은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회의는 시작부터 팽팽했다. 조합장은 정비업체 대표에게 대부분의 내용을 위임했는지, 조용히 앉아 계셨다.
나는 추진위원회 시절 작성된 협약서의 독소조항을 지적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어 ″왜 지금까지 상가 조합원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고 질문하자, 정비업체 대표는 조합장과 같은 논리를 되풀이했다.
그는 추진위원장이 작성한 부실한 협약서를 흔들어 보이며,
″관리처분 때 해주면 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의 태도는 마치 조합장을 대신해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 같았다. 이어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관리처분 때 처리하면 되는데, 상가협의회 요청으로 오늘 회의를 진행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지지 않고 반격했다.
″대표님, 우리 재건축 조합원이 아닌 분이 왜 이렇게 큰소리를 치십니까?″
그러자 그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며,
″아, 그럼 녹음합시다!″라고 맞섰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습니다! 녹음합시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한판 붙을 태세로 대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조합장이 급히 개입했다.
″자, 자, 소리 지르지 맙시다. 다들 진정하세요! 오늘은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모인 자리입니다. 감정을 담아 회의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 판을 뒤집을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정비업체 대표를 바라보며 차분히 물었다.
″대표님, 대체 무슨 자격으로 상가 조합원 협약서에 조합장과 함께 이름을 올리셨습니까?″
나는 이렇게 덧붙이며 못을 박았다.
″행여 상가 조합원에게 재산 피해를 입히는 일이 생긴다면, 조합장님과 함께 대표님도 고소할 것입니다.″
내 단호한 말에 정비업체 대표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한층 낮아진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 그때 협약서를 작성할 때 조합장님 옆에 있다가, 상가 조합원이 이름을 넣으라고 해서 넣은 겁니다.″
대표는 변명인지 해명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으며 책임을 회피하려 애썼다.
이렇게 기선제압을 한 뒤, 우리는 다시 협상을 시작했다.
추진위원장 시절 작성된 협약서를 상무님이 한 항목씩 읽어 내려가며 논의를 이어갔다. 1차와 2차에서 이미 합의된 부분은 무리 없이 통과되었지만, 핵심 쟁점들은 여전히 팽팽한 대립을 보였다.
① 상가 미동의자와 현금청산자 처리 문제
② 지하상가로 지어질 상가 면적을 상가 측이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지
③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로 갈 수 있는 산정률을 기존 0.4에서 작은 지분 상가 조합원들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
이 모든 것이 숨 가쁘게 이어진 협상의 주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정비업체 대표는 마치 상가 땅이 자신의 땅인 것처럼 필사적으로 맞섰다. 명탐정 건축사님의 날카로운 전문적 반격에 잠시 한발 물러섰다가도, 다시 공세를 취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 싸움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3시간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이어진 협상에 모두가 지쳐갔다.
나는 브레이크 타임을 제안했다.
휴식 시간 동안, 나는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와 빵, 이온음료를 사 왔다. 모든 비용은 내 사비로 충당했다. 상가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30만 원씩 모아 상가협의회 대표 활동비로 준 돈이 있었지만, 그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가조합원들 중 일부는 직접 나서지도 않으면서 활동비 지출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불편했던 나는 결국 상가 총무로서의 모든 활동에 필요한 경비, 기름값은 물론 협상 때마다 준비해 간 간식비까지 모두 내 사비로 충당하며 해결했다.
모두가 지친 3시간 동안, 내가 사 온 커피 한 잔이 작은 위로와 충전의 역할을 했다. 잠깐의 휴식을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치열한 2차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협상은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명탐정 건축사님이 어제 새벽에 보내준 자료를 꺼내 들며, 세 가지 제안을 논의해 보자고 명탐정 건축사님께 제안했다.
■ 상가 측의 예상되는 권리 지분■
① 아파트 37호 + 상가 전체
② 아파트 37호 + 상가 전체의 3%
③ 상가 전체 + 아파트 알파
◇ 상가의 토지 지분은 전체 단지 지분에 약 3(2.97)%에 해당
[ 설 명 ]
(1항): 상가의 용적률에 따라 지어지는 아파트 37호와 상가 전체가 상가 측 지분 이라고도 생각을 할 수 있다.
(2항): 아파트 37호와 전체 상가 전체 중 3% 지분만이 상가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상가 조합원 중에 상가를 분양받는 분이 많아 3%를 초과할 때는 초과한 비율만큼 금액으로 계산하면 된다.
(3항) 상가 전체와 남은 토지면적 (상가 측 토지 지분 - 상가에 배분된 토지 면적 = 남은 토지 면적)에 지어지는 아파트 호수만 상가 지분이라고 조합에서는 생각할 수 있다.
명탐정 건축사님이 이 이야기를 꺼내자, 정비업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하면 협약서가 너무 복잡해지니, 상가 미동의자와 현금청산자는 상가 소유로 하고, 상가 땅에 지어진 아파트는 상가 면적에서 제외하자"라고 제안했다.
우리는 "상가 용적률로 지어진 아파트는 상가 소유이니 건드리지 말라"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가 협약서 작성 이후 상가 면적 협상을 다시 진행할 여지를 두기로 하고, 한발 물러나 합의하기로 했다. 결국, 상가 미동의자와 현금청산자 문제는 "그렇게 합시다"라는 만장일치로 일단락되었다.
다음 과제는 조합 설립 당시 정관에 명시된 "제63조(관리처분의 방법)"과 관련된 문제였다.
"가. 새로운 부대 복리시설을 공급받지 아니하는 경우로서, 종전의 부대 복리시설의 가액이 분양주택의 최소분양단위 규모 추산액에 총회에서 정하는 비율(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1로 한다)을 곱한 가액 이상."
이 조항에 따라, 상가를 공급받지 않는 경우 총회에서 정한 산정률(협약서에 명시된 0.4)만 충족하면 상가 조합원도 아파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가 조합원들이 전혀 모르게 2020년에 정관이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가. 새로운 부대 복리시설을 건설하지 아니하는 경우로서" 수정되었다.
이로 인해 상가 조합원이 상가를 먼저 받고 나서야 아파트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이 변경된 상태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비싼 상가를 받은 뒤 아파트로 갈 수 있는 상가 조합원은 고작 2명 정도에 불과했다.
명탐정 건축사님은 정비업체 대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상가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아파트를 받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겁니까?
대표의 대답은 황당했다.
"상가를 아주 작게 분양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이에 명탐정 건축사님이 물었다.
"대표님, 이런 방식의 재건축을 실제로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표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변호사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부터 이 문제는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방식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다른 대책 방안을 조합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일단 마무리 지었다.
다음으로 공급과 건설 문제를 놓고 논의가 이어지던 중, 나와 명탐정 건축사님은 "산정률을 조절하여 상가 조합원들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조합장은 0.4 이하로 낮출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비업체 대표는 "상가 조합원의 분양 신청 결과에 따라 '정관으로 정하는 비율'은 관리처분 계획 수립 시 상호 협의하여 조정하기로 한다"는 문구를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0.1로 산정률을 낮추어도 권리가액이 되지 않는 상가 조합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가 조합원의 분양 신청 결과를 보고 나서 조정하자는 제안은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이 숙제가 끝나고, 상가협의회는 협약서 ⑥번 항목을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⑥ 소규모 상가 조합원들이 상가 분양을 희망할 경우, “조합”은 이를 반영하여 상가 신축 계획안을 수립하기로 한다.
그러나 조합은 이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고집했다.
⑥ 상가 조합원들의 상가 분양 신청 결과에 따라, 조합은 사업 시행 계획의 경미한 변경 범위 내에서 상가 협의회의 상가 신축 계획안을 협의하여 변경하기로 한다.
결국 ⑥항은 조합이 물러서지 않을 각오로 주장하였으며 추후 협의하자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 우리 재건축 아파트 상가는 모두 지하상가로 계획되어 있으며, 사업시행계획도 지하상가 면적(2,779.28㎡)으로 신청되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경미한 변경 범위 내에서만 변경이 가능하다면, 상가 조합원은 모두 지하상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불리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조합장은 ⑥항목에 대해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상가 미동의자, 현금 청산자” 모두 상가 소속으로 처리되었으니, 이 항목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 항목을 통해 상가 땅의 용적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협상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추진위원장 시절 작성된 협약서가 상가 조합원들을 위한 실질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독립정산제″와 ″산정률 0.4″ 외에는 상가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항이 전혀 없었다.
다만 새로운 협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명탐정 건축사님의 완벽한 자료와 정확한 데이터 분석 덕분이다. 전문적인 건축 지식이 바탕이 되어 우리 재건축 단지에서 상가 문제를 하나하나 찾아내고 분석한 결과, 오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위대하고 훌륭한 명탐정 건축사님 덕분에 나도 조합장과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료를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니, 조합장도 답답하지 않았을까? 만약 착오가 있거나 대충 얼버무리며 회의를 했다면, 아톰 조합장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톰 조합장도 명석하고 예리한 분이었으니까!
어느 누가 그랬던가?
″서울에서는 눈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간다″고!
아파트는 개인의 지분에 따라 추가 분담금을 내고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지만, 상가는 그 구조가 다르다.
최근 유튜브 방송을 보면, 상가를 두고 마치 ″가치 없는 상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파트를 받으려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그러나 상가 역시 상가 나름의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상가처럼 360평의 상가 부지를 활용해 지상 300% 용적률로 아파트를 짓고, 상가는 지하로 배치하는 경우라면, 상가 부지에서 건설된 아파트를 상가 조합원이 분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타당하다.
문제는 그동안 상가조합원이 아무것도 모른 채 조합장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고 방관했다는 점이다.
협약서를 마무리 짓고 나니, 온갖 피로가 밀려왔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며, 명탐정 건축사님께 이젠 더 이상 상가일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명탐정 건축사님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사업시행인가 총회 전까지 "경미한 변경의 적용범위와 상가가 요구한 상가 축소 안"을 이사회와 대의원회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다시금 무거운 짐을 짊어지라는 의미였다.
조합장과의 협상은 온전히 내가 맡고 있다. 준코 회장은 이름만 회장이었을 뿐, 협상에서는 동행하여 내용을 듣고, 상가 조합원의 간담회나 비상회의를 소집할 때 연락하는 역할에 그쳤다.
준코 회장은 협상과 관련해 이렇게도 말했다.
"총무 혼자 조합장을 만나면 상가조합원들이 조합장에게 돈을 받는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협상 때는 반드시 나와 함께 가야 합니다."
당시에는 이 말의 의미도, 준코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나는 오직 상가협약서를 새롭게 작성하고 총회를 통과시키겠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미친 듯이 조합장과 협상에 매달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