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내가 갈망하던 꿈의 직장입니다."
민자가 면접을 볼 때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민자. 거짓말을 한다. 스벅 매니저가 스타벅스는 민자에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민자는 스타벅스는 그녀의 모든 것이라고. 꿈이라고 얘기했다.
"내일부터 출근 가능하시지요?" 깐깐해 보이는 백인 할머니 매니저가 물었다.
"그럼요. 지금 당장도 출근 가능한 걸요." 민자가 딸랑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부끄러운 건 없다. 스타벅스에서 일만 할 수 있다면 거짓말이고 나발이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민자.
그렇게 구한 직업이었다. 스타벅스 일이.
'드림잡 웃기고 있네. 미친.'
하루 종일 8시간, 오버타임을 하는 날은 10시간. 민자는 커피를 말면서 자기 인생도 말았다. '이렬려고 캐나다에 온 건 아닌데.' 민자는 생각한다. 아줌마 나이 40 먹고 뭐 어디 써주는 데는 있을까?
엊그제였다.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민자가 전화통화를 했다.
"야, 40 넘으면 식당 알바도 안 써줘. 설거지하는 일은 또 몰라도." 친구가 말한다.
'그렇지 맞아 내 주제에 무슨 이직이야. 그냥 스타벅스 잘 붙어 있다가 60 넘으면 은퇴하지 뭐.'
'아니, 60살이 넘어서 은퇴는 할 수 있을까? 65? 설마? 70까지? 에이. 안돼. 커피통 들 힘도 없어.'
민자가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70살까지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을 본인을 상상한 민자. 다른 걸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40대를 맞이할 줄을 몰랐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는 야망도 있었고 계획도 있었다. 지금 민자는 축 퍼진 찬밥 같은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출근을 하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든다. 커피를 손님에게 전달하고 매장청소를 한다. 다음날도 똑같은 일을 한다. 캐나다에 온 지 15년이 되었다고는 했지만 매일 같은 영어만 쓰는 덕에 영어도 제자리걸음이다. 민자는 부끄러웠다. 캐나다에 와서 고작 한다는 게 스타벅스 일이었다.
"스타벅스는 알바 아니야?" 친구의 말에 더욱 기가 작아졌다.
민자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민자의 가치를 잃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아무도 민자의 나이를 묻지 않았지만 나이 40이 넘어서 안될 거라고 민자 스스로 선을 그었다.
'안될 거야. 나이 많아서 안돼. 다른 걸 해보려고 해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만약 다른 걸 하다가 망하면 그때는 다시 일어서기도 힘들 거야. 그래, 스타벅스 밖에 없어. 내가 일할 곳은.'
그렇게 버틴 8년이었다. 캐나다 스타벅스 아르바이트. 아니 직장 경력 8년. 열등감에 차 있는 민자는 모든 것들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민자는 모르고 있었다. 8년 동안 스타벅스에서 버틴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버려지는 시간들은 아녔다는 걸. 8년 동안 스타벅스에서 일할 수 있던 민자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는 걸.
비교가 그렇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진다. 민자는 늘 다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래도 스타벅스에서 8년이나 일한건 대단한 거 아니야? 한국 스벅 경력까지 합치면 10년 넘는 거잖아." 친구의 말에 민자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맞아,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8년이나 일했다는 건 진짜 대단한 거야.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중간에 그만두고 나간 사람도 많았잖아.'
누군가의 말대로 고작 커피를 만드는 그 일을 민자는 8년을 넘게 해 왔다. 그 돈으로 캐나다에서 집도 사고 아이도 길렀다.
'어쩌면 나도 대단한 사람일 지도 몰라.'
민자는 다짐했다. 남과의 비교가 아닌, 앞으로 민자가 나아갈 일들에 집중하기로 한다. 아직은 불완전한 미래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민자는 흔들려도 우직하게 잘해나갈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