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로 라테를 만들어 줘.
'한국 여자 친구 구함.'
그가 입은 티셔츠에 한국말로 저렇게 쓰여있다. 오십은 되었을까? 아니 마흔? 백인들은 나이를 모르겠다.
"안념하쒜요."
그가 민자를 보며 한국말을 한다. "미친놈 또 왔네." 속으로 한마디 한다.
"미안. 나 몽골 사람이야. 코리안 아니고." 선을 긋는 민자. 옆에 직원이 민자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너 코리안 이잖아." 이런 역시 손발이 안 맞는다. 자주 오는 백인손님들 중 변태들이 몇 명 있다. 어린 동양여자애를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속이 시꺼먼 저놈은 딱 봐도 오십 넘은 민자 큰 아빠 뻘이다. 그렇다고 민자가 어리다는 건 아니다.
10분 전도 그랬다.
"볼드 커피 한잔 줘."
"어떤 사이즈로 줄까?" 민자가 묻는다.
"너 지금 내 사이즈 묻는 거야? 내 사이즈는.......?" 변태 할배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니 사이즈 알아 스몰. 스몰로 줘?" 옆에 직원들이 킥킥 거린다. 미친놈 자기 사이즈를 왜 나한테 물어. 딱 봐도 작게 생겼구먼.
"우히히히히. 유알 쏘 퍼니. 너 정말 웃긴다." 변태 할배가 박장대소를 한다.
변태 할배는 민자 스벅의 단골이다. 변태 할배는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민자는 묻지 않았지만 변태 할배는 말을 이어나갔다. 할배는 변태다. 외로운 변태. 밴쿠버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와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하루종일 앉아 있는다.
앉아서 사람구경도 하고 일하는 직원에게 말도 건넨다. 민자는 할아버지가 귀찮을 뿐이었다. 싫지는 않다. 치과 갈 돈이 없어 이 몇 개가 듬성듬성 빠진 변태 할배가 매장에 오지 않는 날은 괜히 걱정도 했다.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변태 할배처럼. 민자도 외로운 사람이다. 외로워서 한국을 도망쳐 캐나다까지 왔다. 민자는 변태 할배처럼 외로운 속을 반이 갈라진 참외처럼 내 보이고 싶던 적도 있었다. 민자는 방법을 모른다. 그냥 쓰디쓴 에스프레소처럼 꿀꺽 삼킨다. 외로움을. 그리고 아픔을.
"이거 드셔. 날짜가 어제까지인데 나도 아까 하나 먹었거든. 이따 점심때 드셔. 매니저한테는 말하면 안 돼. 알지? 나 꽥하고 잘려."
민자가 유통기한이 지난 크로와상을 변태 할배에게 건네면서 귓속말을 한다. 손으로 자기 목을 긋는 시늉도 한다. 변태 할배가 윙크를 하며 말한다. "당연하지. 허니."
변태 할배가 팁통에 $1불을 던져준다. 민자가 말린다.
"팁 안 줘도 돼요. 할배. 괜찮아."
"아니야. 줘야지."
하루에 한 번씩 민자가 일하는 매장에 오는 변태 할배는 꼭 팁으로 $1불씩 줬다. 나이가 67이라고 했던가? 변태 할배는 여름에는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겨울에는 호텔에서 청소를 했었다. 지금은 일을 구하고 있다고 했고. 캐나다에서 주는 정부 지원으로는 변태 할배가 먹고살기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변태 할배는 너덜거리는 신문 조각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며 직업을 찾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민자는 팁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 주문된 빵, 음료를 버리지 않고 한데 모아다가 변태 할배가 매장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민자는 스타벅스 누런 종이백에 그것들을 모아 변태 할배에게 건넸다. 아마 그것들이 변태 할배의 저녁이 되고 다음날 아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커피에 우유 좀 타줘." 변태 할배가 말한다.
"어떤 우유 줄까? 우리 아몬드, 코코넛, 두유, 그리고....." 민자가 말을 이어나가려는데 변태 할배가 말한다.
"모유는 없어?"
"경찰 부를까?" 민자가 농담을 한다. 변태 할배가 '쏴리쏴리' 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역시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변태 할배 덕에 일하는 시간이 빨리 갔다. 벌써 퇴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