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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부자엄마 Nov 07. 2024

어디까지 욕먹어봤니? 캐나다에서.

영어 못하는 게 죄냐? 서러워서 정말.

"너, 지금 내가 하는 말 못 알아듣냐고? 시럽 몇 번 넣었냐니까? Fxxx"


민자가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일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일을 했다는 이유로 민자 운 좋게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쓰던 기계와 같았다. 메뉴도 비슷했다. 문제는 영어였다. 망할 놈의 영어.


백인 애들. 그러니까 손님들은 민자가 생각한 친절하고 여유 넘치는 캐네디언들이 아니었다. 말은 또 어찌나 빨리 하는지. "눼? 뭐라고요? 뭐라는 거야?" 민자는 감으로 주문을 받았다. 


"뜨겁지 않게. 그렇다고 차가운 건 싫어. 키즈 핫초코 만들 때 온도가 몇 도야? 110도? 나는 그럼 125도로. 샷은 디카프 반샷에 카페인 들어간 반샷. 우유는 코코넛 반에 두유 반으로 해줘. 거품은 아예 안 나게. 그리고 너네 왜 컵 위쪽까지 음료를 가득 안 채워죠? 컵 위까지 음료를 가득 채우고 시럽은 헤이즐넛 시럽 한 펌프, 그리고 화이트 모카 시럽 한 펌프 넣어줘."


이렇게 주문하는 백인을 민자는 넋을 놓고 바라본 적도 있었다.


영어가 이렇게 위험한 것일 줄은 민자는 몰랐다. 그날 민자는 영어에 취해있었다. 영어에 홀려 넋이 나간 민자 앞에 금발머리를 말 꼬랑지처럼 높게 묶은 백인여자가 나타났다. 딱 봐도 별로인 사람. 스타벅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부터 아우라가 별로다. 민자가 얼핏 본 손톱은 세상에 마상에 독수리 발톱이다. 거기다가 정신 사납게 매니큐어를 색깔별로 다 발라놨다. 기가 어찌나 센지. 민자 잠깐 그 여자와 눈을 마주쳤는데 팬티에 지릴 것 같다. 고개를 돌린다. 황급히.


암튼 그 백인 여자가 주문을 했다. 


"얼그레이 라테에 시럽 빼고." 몸매가 퐝퐝 드러내는 룰루레몬 레깅스를 입었다. 위에 입은 옷은 단추 두 개가 벌어져 있다. 그 사이로 민자 엉덩이 만한 가슴이 인사를 건넨다. "까꿍" 눈을 어디다 둬야 될지. 민자,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주문을 받고 나서 민자가 음료를 만든다. 그날따라 같이 일하는 애 하나가 아프다고 못 왔다. 5분 전까지 매우 건강했던 민자. 저 여자 때문에 졸도할 지경이다. 무섭다. "


얼그레이 라테를 한잔 말아서 여자에게 건넨다. 빨리 가라. 민자가 다음 음료를 만들려는 찰나. 그 백인 여자가 뒤돌아 본다. 불길하다.


"여기다 시럽 넣었어?" 그 백인 여자가 묻는다.

"아니요. 넣지 않았습니다." 민자가 답한다. 

"단 맛이 나는데? 여기다 시럽 넣었냐고?" 백인 여자 목소리가 높아진다. 순식간에 매장 안의 사람들의 눈이 민자에게 쏠린다. 민자 토가 쏠린다.


"아..." 민자가 대답하려는 사이. 백인 여자가 으르렁 거린다.

"너, 지금 내가 하는 말 못 알아듣냐고? 시럽 몇 번 넣었냐니까? Fxxx"


'뭐야.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 민자가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건.


"Hey, 왜 욕을 하고 그럽니까? 시럽이 들어갔으면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지. 이 분에게 욕할 권리는 없지 않습니까?"


길길이 날뛰는 백인 여자 뒤에 서 있던 또 다른 백인 여자 아니 천사였다. 민자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천사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래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아침에, 출근해야 돼서 안 그래도 바쁜데.." 그 백인여자가 말했다.

"아침에 바쁘면 스타벅스 주문 안 하고 그냥 가면 되지요. 안 그러면 더 일찍 나오던가. 스타벅스는 매일 아침마다 바쁜 거 몰라요?" 천사가 또박또박 백인 여자의 말에 반격했다. 어쩜 영어를 저렇게 잘할까? 민자는 천사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본다.


"쏘오리." 미친 백인여자가 말한다. 쏘리라고.

"아니요. 나한테 사과하지 말고 바리스타한테 사과하세요." 어쩜 천사는 끝까지 멋있다. 


미친 백인여자는 민자를 10초 동안 쏘아보더니 그냥 갔다. 다시는 오지 말아라. 멀어지는 뒤통수에 대고 민자 마음속으로 Fxxx를 날린다. 쌍 Fxxx를.


"너무 고맙습니다. 음료는 제가 살게요." 고마운 맘에 민자 천사의 음료를 사겠다고 했다. 천사는 끝까지 쿨하다.


"괜찮아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천사가 총총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감동이다. 천사는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났을까? 나중에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거든 민자 꼭 하기로 다짐했다. 그것이 천사에게 받은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길.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배려와 존중,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산다. 민자도 그중 하나였다.


민자는 천사 덕분에 돈 주고도 얻지 못할 소중한 걸 배웠다. 


그날 이후 무례한 백인 여자는 민자의 스타벅스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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