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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부자엄마 Oct 26. 2024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40대. 한국 아줌마,민자.

내 이름. 민자 리.

캐나다 스타벅스에는 한국 아줌마 이민자 씨가 있다. 성은 이. 이름은 민자. 혹은 민자 리.


나이는 40대. 개띠. 82년생. 빨리빨리를 좋아한다.


"헬로. 뭐 마실 거야?" 물론 영어로 말을 한다. 편의상 한국말로 쓴다.


캐나다 스타벅스는 바쁘다. 민자가 일하는 곳은 더욱 그랬다. 밴쿠버에서 가장 바쁜 스타벅스 3위안에 드는 곳이라고 했다. 어딜 가든 민자는 일복이 터졌다. 우악스럽게 팔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계산대 앞에 섰다. 새벽 5시부터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스타벅스 게이트가 열리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


꿀꺽. 민자. 침을 삼킨다.


"준비 됐어?" 같이 일하는 필리피노 직원이 게이트를 잡고 묻는다. 저 게이트가 열리면 사람들이 들이닥칠 거다. 시계를 본다. 4시 59분. 민자가 귓속말을 한다. "우리 아직 1분 남았어."

눈알들이 시부린다. 눈알로도 욕을 할 수도 있구나.


게이트를 다 밀기도 전에 사람들이 우르르 매장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하.. 이"


민자가 아침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백인 남자 하나가 인사도 없이 주문을 한다.


"매일 마시던 걸로 줘."


그냥 말을 하면 될걸 꼭 이런 식이다.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이 남자가 단골이었던가?

"그게 뭔데? 말을 해줘야 알지." 민자가 되묻는다. 스타벅스 바닥에서만 10년 넘게 일했다. 깡쎈 한국 아줌마 민자는 지지 않는다.


백인 남자가 욕을 한다. "뻑."


"나 너한테 커피 안 팔아. 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민자가 백인 남자의 주문을 패스한다. 어디서 갑질이야. 백인이면 다냐? 쌀도 흰밥은 안 먹는 민자다. 현미라던지 검은 쌀이 몸에 좋다며 늘 색깔 있는 쌀만 먹는 민자다.


백인 남자는 아직도 안 가고 뻑뻑거린다. 필리피노 직원이 카운터 밑 빨간 버튼을 누른다. 곧 시큐리티가 올 것이다. 꼴랑 몇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갑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런 사람들에게는 커피를 팔지 않아도 된다. 캐나다라 이건 좋다. 한국이었으면 모르겠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 몇몇 진상의 얼굴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저벅저벅 저기 멀리서 시큐리티 아저씨가 걸어온다. 민자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그만하고 나가시죠. 경찰 부르기 전에." 백인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뻑뻑거린다. "내가 여기 다시오나 봐라."

저런 놈들이 꼭 다시 온다는 걸 민자는 알고 있다.


"하이" 민자가 다시 주문을 받는다. 한국 학생이 바들바들 마지막 잎새처럼 떨고 있다. 아마 오늘이 영어로 주문을 처음 하는 날인가 보다.


"학생, 나도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말이 편하면 한국말로 해요. 아니면 영어로 해도 되고요." 한국인인 그녀는 같은 한국인들에게는 친절하다. 민잔 캐나다에 15년 전에 왔다. 혼자서. 취업사기도 당해보고 성추행도 당했다. 민자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민자 같아서, 캐나다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서, 친절을 가장한 응원을 보내는 거다.


아 물론 예외는 있다. 엊그제 캐나다에 이민 온 지 20년이 넘었다는 목사가 와서 교회를 다녀야 되네 마네. 사회생활이 어떻고 저쩧고 반말을 쥐처럼 찍찍 날릴 때는 한국말 이해 못 하는 척을 했다. "쏴리?"


"다행이다. 저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로 주세요." 한국 학생이 12월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역시 한국인은 얼어 죽어도 아이스다.


카톡 캐릭터가 그려진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한국 학생을 빤히 바라보는 민자. 역시 신용카드도 한국 것이 예쁘다. '삐익' 카드가 먹히지 않는다. 한국 학생 얼굴이 잘 익은 총각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다.


"괜찮아요. 이거는 내가 살게요." 민자 씨가 쏜다. 민자 씨는 아니고 캐나다 스타벅스가 쏜다. 한국인에게는 관대한 민자.


"오, 아니에요. 제가 돈 다시 갖다 드릴게요." 한국 학생이 손을 비행기 프로펠러처럼 흔든다.

"괜찮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기 돈 나간 것도 없으면서 민자가 생색을 부린다. 기분 좋다.  


커피를 쳐내고 손님들도 쳐낸다. 새벽 5시 반에 자바칩 프라푸치노도 만든다. 누가 주문했나 얼굴 확인하는 민자. 믹서기에 얼음을 넣고 드르르 간다. 새벽에 찬 거 먹으면 설사할 텐데. 걱정을 사서 해주는 민자.


그나마 겨울이라 프라푸치노가 덜 나간다. 여름에는 프라푸치노만 만들다가 양쪽 겨드랑이가 다 젖었던 민자다.


민자가 시계를 본다. 이제 곧 퇴근이다. 8시간을 서서 일했던 민자에게 선물 같은 퇴근이다. 민자가 제일 좋아하는 오트 라테를 정성껏 만든다. 오트 라테 마실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거 마시면서 집에 가는 길에 이무진 노래를 들어야겠다.'

 

좋아하는 오트 라테를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을 상상한다. 민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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