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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캐나다 통장에 6천만 원이 있지.

by 캐나다 부자엄마

돈이 모였다. 처음엔 $500불. 그러니까 오십만 원만 모으자고 맘을 먹었다. 돈 버는 액수는 정해져 있었다. 돈을 더 벌 순 없다. 캐나다 내 비자 상태가 그랬다.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버는 건 정해져 있으니 돈을 아끼자고. 그래, 딱 삼 년만 구질구질하게 살아보자 했다. 어차피 뉴펀들랜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인도 없으니까.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고 매일 같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목표가 그렇다. 무엇을 이루어내겠다는 마음이 강해 사사로운 옷차림 따위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쯤. 한국에서 남자친구가 왔다. 그는 호텔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근사한 직업은 아니었다. 팔다리가 저리고 어깨가 결리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캐나다에 처음 온 그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일자리였다. 우리 딱 3년만 여기서 돈을 모으고 떠나자. 그때까지만 우리 힘들어도 버티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두쪽이 나도 한 사람의 월급은 무조건 저금을 했다. 돈이 천만원정도 모였을 때쯤 남자친구는 일하나를 더 구했다. 집을 돌아다니며 잔디를 깎아주거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호텔이 쉬는 날에 그는 쉬지 않고 남의 집 잔디를 깎았다. 겨울이 되면 눈을 치워주기도 하고 쓰레기도 버려주는 잔심부름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궁색했다. 초라했고.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다가 쥐 파먹은 뒷덜미를 부여잡으며 깔깔거렸다. 뭐야. 머리카락 다 뜯겼는데 이렇게 하고 어떻게 출근해. 내가 투덜 걸면 그는 말했다. 어차피 우리 아무도 안 보잖아. 괜찮아. 모자 쓰고 일주일만 다녀도 금방자라. 말도 안 되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둘이 똘똘 뭉쳤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으쌰으쌰 잘한다 잘한다 응원하면서 딱 삼 년만 돈을 모아보자 했다. 우리가 얼마나 돈을 모을 수 있나 궁금했다. 3년이 채 안돼 뉴펀들랜드를 떠날 쯤엔 6천만 원을 모았다. 사실 6천만 원이 누구의 기준으로 많이 모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의미 있는 돈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분. 돈만 모았을 뿐인데 우리는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용기를 얻었다. 돈 때문에 돈 덕분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기분. 난 통장에 육천만 원 있는 사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뭔지 모를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 난 돈도 모아봤잖아. 아무것도 없었는데 동동거리면서 하니까 됐잖아. 그냥 달려드는 거야. 뭐라도 하면 정말 뭐라도 되는 거야. 그렇게 내가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인생이 삶이 재미있어진 건. 캐나다 통장에 6천만 원이 쌓이고 나서부터 나는 6천만 불의 사나이의 여자 버전이 되어있었다.


일어나야지. 슬슬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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