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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픽토 Nov 02. 2024

다시 춤바람

마음만은 뉴진스

"와 너 수학여행 때 정말 짱이었어!"

"언제 그렇게 춤을 연습했데~ 진짜 멋지더라!"

"장기자랑 때 컴백홈 춤 진짜 반했어!"

중학교 2학년 말, 교실에서 돌린 나의 롤링페이퍼는 전부 수학여행 때 췄던 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대문자 I 성향이었던 나는 교실에서 항상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밖에선 한없이 내성적이었고, 어디서도 절대 나서지 않는 나였지만, 내가 한없이 자유롭게 날 표현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춤을 출 때였다. 


처음 춤을 췄던 건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서점을 하다 망했던 우리 집에는 팝송 테이프와 LP판들이 많이 있었는데, 신나는 팝송을 들으며 몸을 흔들기 시작하다 춤의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가수 현진영의 데뷔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현진영 Go 진영 Go"에 맞춰 춤을 추며 방송댄스의 맛을 들여버렸다. 그 후로 시대를 뒤흔든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신곡이 나올 때마다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하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보며 춤을 외우는 게 일상이 되었었다. 요즘처럼 방송댄스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구석에서 비디오를 돌려보고 추는 것이었지만, 그 시간만은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춤을 완벽히 외우고 똑같이 따라 추게 된 순간의 희열은 춰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으리! 

춤을 너무 좋아해 중학교 때는 잠깐 백업댄서가 되는 게 꿈인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어린 나이에 백업댄서는 소위 노는 언니, 오빠들이나 할 수 있는 직업처럼 느껴졌고, 한없이 조용하고 일탈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내게는 그저 머나먼 별나라 이야기였다.  


대학 때까지도 방구석에서 늘 춤을 추고는 했지만, 취업을 한 후로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쉽지 않았다.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느라 진정 사랑하는 순간들은 누리지 못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방탄소년단의 "MIC Drop"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내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 그 멋스러운 춤에 눈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십수 년 만에 다시 춤을 춰 보았다. 예전보다 더 많이 돌려보기는 했지만 결국 춤 전체를 외우는 데 성공했다. 며칠을 계속 다시 보기 하며 연습하는 동안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었던 조카들이 놀러 왔다 나의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한 녀석은 이모 춤 진짜 잘 춘다며 칭찬을 해 주었고, 한창 예민한 중2병 환자였던 조카는 나이를 지긋이 먹고 아이돌 춤을 따라 하는 이모를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쩔어," "아이돌" 등 다른 곡들도 연습해서 춰 보았고, 어릴 적 느끼던 그 희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건 본능이었고, 음악은 내 피 속을 흐르는 또 다른 혈액이었다. 하지만 흘러간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한 번은 춤추는 모습을 한 번 찍어서 보고 싶어 스마트폰을 세워두고 찍어 본 적이 있는데, 분명 영상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데도 묘하게 아줌마스러운 바이브가 뿜어져 나왔다. 

뭔가 좀 서러워졌다.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어릴 적 그대로인데, 내 몸의 움직임이 더 이상 멋짐을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이토록 '아줌마스러움'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춤추기를 즐기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열정적이다. 단지 세월에 맞게 그 표현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어쩌면 이 '아줌마스러운' 움직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우아한 각인일지도 모른다며 정신승리를 하기로 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나는 춤을 사랑하는 중년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예고편이다. 청춘의 열정과 중년의 관록이 섞인 이 독특한 색채야말로 지금의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나는 오늘도 새로 나온 케이팝을 틀고, 거울 앞에서 어설픈 춤을 춘다. 타인이 보기엔 조금은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어떤가? 이것이 바로 단점으로 가득한 사십 대를 내가 즐겁게 버텨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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