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선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중년의 여성을 일컫는 호칭이다. 본래는 친척 여성에게 부르던 칭호였다던 아주머니는 1910년 이후 일반 기혼 여성에게도 사용하면서 주로 '결혼한 여자'를 평범하게 부르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요즘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하는 연령대는 점점 높아지고 비혼주의자들도 많아지면서 예전이면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아줌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나이대에 싱글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 외적으로는 '아줌마' 또는 '아저씨'라는 호칭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을 나이대인데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마흔을 넘긴 비혼주의자이다 보니 그 혼란스러운 상황의 중심에 있다. 집 밖에서는 반평생을 '학생'으로 불려왔던 것 같은데, 그 후에는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그 밖에는 별다른 호칭을 들어본 기억이 없던 터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아줌마로 불렸을 때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꼬마 아이에게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아이의 시선에 나는 당연히 아줌마였을텐데도 불구하고,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라 머리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까지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자매품으로 '어머님'과 '여사님'도 있는데, 상담사와 호객꾼에게 들어본 호칭이었다. 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는데 어느새 어머니의 나이가 돼 버려 종종 아이는 몇 명인지, 몇 살인지까지 물어보는 난처한 상황도 종종 겪게 되었다. 보통 기사님이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 뒷자리 정도는 앉아야 들을 수 있는 말인 줄 알았던 '여사님'이라는 단어도 참으로 생경하고 난처한 호칭이었다. '아줌마'라는 단어에 담긴 부정적이거나 하대하는 듯한 느낌을 배제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나름의 존중을 담아 선택한 호칭이라는 것 또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갖다 댄 듯 움찔하게 된다.
때로는 내가 사회의 기준의 맞게 적당한때에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수 세기 간 다수의 사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살지 않고 이탈하는 바람에 사회 통념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혼선을 준 것은 아닌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러기에 이 시대는 이미 그런 통념 따위는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를 포함하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은 중년 또는 노년의 미혼들이 1인 가구로 살아가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 새로운 호칭이 하나쯤 주어질 때도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호칭이 생긴 들 그 호칭이 기분 좋은 단어로 인식될지도 미지수이다. 그러므로 아줌마, 아저씨, 어머님, 아버님, 여사님, 어르신 등등 외형이 변하면서 어떤 호칭이 공격해 오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내 마음과 열정은 여전히 스무 살 때의 풋풋함이 남아있다. 비록 외형은 풋풋함은 사라지고 빛바랜 피부톤에 점점 불어 오르는 몸과 쳐지는 턱살이 생겼지만, 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을 부끄러워 말고 당당해지자. 호칭에 연연하지 말고, 내면을 단단히 만들자. 매일 다짐하고 다짐해서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는 당당한 두 번째 스무 살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