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이 많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벌레는 징그러웠지만 싱그러운 풀 내음이 좋았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며 맡은 밤과 아침 사이의 시원한 냄새도 좋았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약속 잡지 않아도 동네 놀이터에 나가면 하나둘 나오던 친구들이 그립기도 하고.
어딜 가면 큰언니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젊으신 엄마와, 그에 반해 띠동갑인 아빠는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더라도 잘생긴 동안이셔서 추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다.
부모님도 든든했지만, 가장 든든한 존재는 돌아보면 오빠였다.
3살 차이가 나는 오빠는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에겐 꼭 응징을 해줬으며 내가 먹고 싶은 건 뭐든 먹게 해 주고 어딜 가나 내가 원하면 함께 가줬다. 나는 금실 좋은 부모님 아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막내딸이다.
이렇게 행복하고 평범한 유년 시절 와중에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자아가 생긴 뒤 학교에서 꿈을 적어오라고 했는데 한참을 고민하고 적지 못한 날도 있었다. 글자를 쓴다고 해서 꼭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난 어려서부터 결정하는 일이 어려웠고, 뱉은 말은 꼭 지키라는 부모님 아래서 자란 덕인지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말은 잘 안 했다. 반 친구들은 의사나 대통령이나 선생님이나 가수 등등 멋있는 직업들을 왕창 써갔는데 내가 어릴 때 적었던 꿈은 빈칸이었다.
백수가 꿈이었나?
하고 싶은 걸 찾아보겠다고 엉성하게 그 첫 발을 내딛었지만, 아직 카페 매니저가 내 꿈이라고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
오랜 시간 꿈이 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직업의 일종이 아닌, ‘부자’라는 관념적인 무언가였기에 꿈을 찾았다고 느끼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퇴근길 엄마가 아닌 아빠와 통화를 하는 이유는 ‘엄마가 빨리 주무셔서’ 였으면 좋겠지만,
사실 엄마는 내 직업을 싫어하신다. 아닌 척하셔도 진지한 대화를 하곤 할 때 무심코 말씀하셨다.
“변변찮은 직업이라도 괜찮으니까. 일단 졸업하고 이력서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너 하나 받아줄 회사가 없겠어?”
내가 아주 어릴 때 부유했던 우리 집은, 아빠가 하시던 사업에 부도가 났었다.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일 저일 젊은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한 엄마다. 엄마는 오빠를 21살에 낳았으니 아무래도 내가 아깝고 안쓰럽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려나, 혹은 말뿐인 점장님의 꿈에 기대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다고 한심하게 여기실 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 마음이 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삼수를 실패한 오빠를 대신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진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태 내가 내린 모든 결론이 어쩌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이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 결국 저지른 일이 모두 불효가 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물론 없는 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결국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 당장의 나를 말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할 때보다 행복하다는 말을 해서.
향하고 있는 완벽한 내 모습이 과연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정답이 맞을까?
나이만 만으로 20살이 갓 넘은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나는 뱉은 말에 책임을 다 하지 못할 까봐 잔뜩 겁먹고 쫄아있는, 나이라는 형식적인 숫자만 늘어버린 성숙하지 못한 성인일 뿐이다.
아빠랑 하는 통화 속에 가끔 아빠는 정말 쓸데없는 잔소리를 한 다곤 느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이런 고민을 혼자 할 걸 미리 알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다.
자기 계발을 멈추면 안 되고, 한 가지 일에만 너무 몰두해선 안된다는 둥, 도통 의미를 모르겠는 말속에서도 점차 아빠의 말속 깊은 뜻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내 흐리멍덩한 눈을 가장 먼저 번뜩이게 만들었던 사람은 아빠였다.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면 아빠는 가장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면서도, 동시에 따끔한 말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주셨다.
“딸은 부자야?”
“난 당연히 집도 좁고 차도 없고 매일 돈 걱정을 하니까 부자는 아닌 것 같은데?”
아빠는 대뜸 혼을 내셨다.
“빚도 없고 돈도 벌고, 집은 좁지만 월세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내는 내 집이니 내 딸은 부자야.”
그 말에 조금은 안심하려던 찰나 아빠는 말했다.
“절대 그 상황에 안주하면 안 돼. 근데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알지, 딸?”
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왜 해설책은 없을까?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모범 답안을 찾으며 살아간다.
나아가고 있는지 뒤를 향해있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좋은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만큼은 찾아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