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었지 않았나.
이젠 더 이상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며 맘껏 뛰어다니긴 어려운 나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한 번 삐끗하면 정말로 남들보다 뒤처진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꿈꿨던 의젓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멋진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가방을 메고, 지옥철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출근하고, 높은 빌딩에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어른이, 나는 아니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위아래 검은색 계열 옷을 입고, 가방도 없이 출근해서 앞치마를 매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때로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지키고 있는 중이다. 한심하다고 했지, 후회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이 생활을 알고 있어도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는데도, 그저 상상만으로 내일을 살 수 있을까.
내 꿈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직영점을 내면 우선 그곳의 점장이 되고, 3호점을 내고, 그곳에 새로운 사람을 구해 3호점을 키우고, 4호점, 5호점을 내서 프랜차이즈화를 이루고 싶었다.
꿈의 크기가 중요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그 꿈이 너무 크고 턱없어 보이기도 해서, 내가 허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걸까?
매장에서 퇴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매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다.
오늘 하루 있었던 여러 일들을 떠올리며, 내일 다시 돌아올 이 공간에서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다.
공허한 매장의 모습과는 다르게, 내 마음 한구석에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 있다.
그 빽빽한 곳에서 물음표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다.
"내일도 이곳으로 출근할 거야. 내년에도 그럴 거지. 근데, 내 후년에도 똑같으면? “
아빠는 사업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간사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나도 아직 점장님의 꿈에 완전히 발을 맞추고 있다는 확신은 없다. 엄마 말씀처럼, 내가 일 잘하는 젊은 매니저니까 그냥 잠시 쓰고,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직영점을 어디에 낼지, 그곳은 어떤 메뉴를 가져가고, 어떤 콘셉트로 운영할지 등 이런 이야기들은 종종 나누지만, 가장 중요한 '언제?'는 들어본 적이 없다.
건방지게 나서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할 수도 있고, 매장 하나를 차리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도 알기에, 그 '언제'에 대해 묻는 것은 정말로 큰 무례이자 부담이었다.
어느 날, 점장님과 함께 바쁜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손님이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이름은 뭐 어떻게 지은 거냐는 둥 고향이 어디냐는 둥 옛날의 나라면 난처해하며 그 질문에 모든 답을 해주었을 텐데, 어느새 나는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답하면서도, 우리가 바쁘다는 사실을 손님이 느낄 수밖에 없도록 행동하고 있었다.
말은 빠르고 상냥하게 했지만, 눈은 절대 마주치지 않았고, 손도 쉬지 않았다.
그때 점장님이 나를 보시더니 말했다.
“서연 씨, 일 많이 늘었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이제 저도 얼굴에 보호막이 하나 생겼죠.”
점장님이 말했다. “방금 꽤 뿌듯했던 거 알아요?”
점장님의 단 두 마디가 머릿속에 남았다. 그동안 내가 했던 고민들과 행동들이 헛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점장님의 말이 진심이었을 거라는 확신조차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뇌세포들이 클럽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원래 칭찬을 잘하지 않으시는 점장님이기에, 일이 더디게 늘고 있다고 느꼈던 내가, 여러 방면에서 성장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준 그 한마디는 나를 여전히 웃음 짓게 만든다.
때론 그 꿈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조금씩,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로 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꿈으로 가는 길목이니까.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던,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정장을 입고 도시에 있는 큰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살아가겠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정장을 입는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내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진정으로 꿈꿨던 것은 멋진 정장이나 고급스러운 회사가 아니라, '나만의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치마를 두르는 이 시간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모든 것은 다 필연적인 과정에 불과하니까.
내가 직접 점장이 되어 매장을 운영하는 작은 꿈부터 시작해서, 그 꿈이 어느 날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꿈이 멋진 정장과 사원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