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고 적응해 가는 중, 갑작스러운 무력감이 밀려왔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 오면 해가 져있다.
이게 다들 원하던 삶이었겠지 하며 합리화했다. 내가 무기력하고 약간의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회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 때는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했고,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볍게 생각해도 취업하겠지 나중에 고민하자 하고 덮어뒀다.
생각보다 빨리 취업한 나는 샛길로 새어가고 있는 중은 아닐까 하는, 뭔가 중요한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다들 이렇게 하루를 똑같이 보내는 걸까?’
‘내가 기대했던 청춘이 이거라고?’
‘매일매일 똑같은 날을 보내면서 한참 먼 실버타운을 생각하면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졸업’이라는 키워드는 설렘을 만들어줬고,
참을성 없는 나에게도 디데이라는 존재는 기다려졌고 열심히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성인이 되어보니 디데이 같은 건 없다.
방학도 없고 졸업도 없고 시험도 없다.
이다음은 뭐야? 어디에 있어?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차분히 아빠와 대화를 이어갔다.
진상도 없었고 하루가 평온했고 잔잔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이를 점차 먹어가더라도 이런 상황에 진전 같은 게 있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또 차오른다.
애당초 부자라는 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에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렸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은 생각보다 추악했고, 나의 소중한 한 시간을 만 원 정도로 환산하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를 가장 막막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건, 어쩌면 모든 현대인들이 끝나지 않을 마라톤에서, 쉬지 않고 굴러가는 쳇바퀴 안에서 살고 있음에도 내가 몰랐다는 그 사실이었다.
인생이 원래 이런 게 맞는 걸까 어쩌면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얄팍한 기대감을 품고선 물었다.
“아빠 인생이 원래 이런 거야?”
울먹이며 물은 나에게 아빠는 진상이 있었냐는 둥 알바가 말을 안 듣냐는 둥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인생이 원래 그래. 매일 뛰어도 티가 안 나. 다 그렇게 살아.”
“그러니까 아빠, 다 이렇게 어떻게 살아?”
“다 힘들고 다 막막하지. 그래서 힘 빠진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아빠 말을 반복해서 되뇌어도 당시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빠 인생을 하소연하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반복해서 떠올리다 보니 알 것도 같다.
스스로 개척하는 거구나.
무력에서 빠져나오려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도 함께 찾아야 했다.
부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왔지만, 카페 매니저라는 직업에 행복감을 느끼지 않기에 우울감이 느껴졌던 아닐까 생각했다. 난 그냥 나약하고 겁쟁이에 조금 아닌 것 같으면 금방 포기해 버리는 싫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해 본 적 없고, 앞서간 나를 쫓아온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이상한 의지만 불타올라 불안감만 떨쳐버리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당장의 내 직업이 옳다 그르다 표현하긴 어렵다. 아마 10년이 지나도 같은 답을 할 거다.
진상을 만나 상처받더라도, 카페를 그만 둘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리가 매일 붓고 손이 따갑게 트더라도 그것 또한 그만둘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다지 안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하찮은 여러 이유들은 금방이라도 그만 둘 이유의 자격을 갖겠지.
처음 레시피를 외워 혼자 만들어낸 음료를 손님께 나갔던 순간,
알바에게 처음 인수인계를 해주던 나,
사고는 치더라도 스스로 수습하던 내 모습,
손님의 친절하다는 말에 환히 웃던 내 얼굴.
나는 잃어버린 볼트를 찾았다.
그것은 눈앞에 있었지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아빠가 해주신 말씀은 힘내라는 말이 아니었다. 힘 빠지면 안 된다고 해주셨던 말씀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아는 아빠이기에, 계속해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였다.
행복한 나를 상상하자, 뿌듯함과 설렘이 가슴에 가득 찼다. 그 감정에 잠기며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