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울 연 Nov 04. 2024

Dear Dad

매니저가 되고 어느 날 손가락 사이사이를 벅벅 긁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모기라도 물렸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미 수포처럼 징그럽게 손이 다 터서 찢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무슨 피부병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주부습진이었다.

설거지할 때보다는 하루에 수도 없이 적시고 물기를 짜야하는 행주 때문에 더 낫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기차역까지 픽업 서비스를 해주고 나를 차에 태우면, 신호가 걸렸을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으신다.

보고 싶었다는 표시인지, 딸 손을 확인하려는 건지, 이미 내 손 상태를 알고선 속상한 마음이신지

아빠가 난시가 심해서 자세히 보지 못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손이 예전보다 거칠어진 걸 느낄 때마다 슬프거나 안타깝기보다는 약간 자랑스럽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 되어, 눈에 보이는 성장이 없는 것 같았는데 내 손이 이 모든 걸 증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중지 손가락에 굳은살이 심하게 생기는 것처럼 나도 그냥 선택한 것뿐이다.

직장인은 허리디스크가 있고, 미용사는 손목터널증후군이 있으며, 승무원은 하지정맥류를 앓는다. 주부는 아니지만, 주부 습진을 앓는 카페 매니저가 되기로 선택했다.     



아빠의 손도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왔을까. 아빠도 내가 느끼는 이 무게를 알기에, 내가 택한 길을 이해해 주실까? 아니면, 그저 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더 걱정하고 계실까.


아빠에게 예전보다 확고해진 이 마음을 전하며,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는 마음을 담아 본다.      




                   

사랑하는 아빠께.     


아빠가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계속 생각했어.

내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먹고 벌써 이렇게나 자랐는데, 아빠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날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는 마음에 자꾸 욕심이 생겨.

아빠는 부담을 준 적이 없었는데, 내가 스스로 부담을 느꼈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해.

난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아빠 그러니까 자책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어.     


진상 손님이 나에게 했던 말들은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하나둘 헤쳐나가고 이겨내는 내 모습이 여느 때보다 자랑스럽다는 말이 하고 싶어.     

밤늦게 혼자 집에 걸어가는 딸이 걱정돼서, 퇴근할 때만 되면 아빠가 휴대폰을 옆에 두고 기다리고 있을 걸 상상하면 죄송하기도 하고 그만큼 너무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져.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게 쉽진 않지 물론. 어느 날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외로워지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다 보면 엄마 아빠랑 같이 오고 싶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랑 소주 한 잔 하면서 다 털어내고 싶을 때도 있어.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들은 나를 성장하게 해 준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어.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갈 거라는 걸 믿어.     


무슨 마음으로 걱정하는지 조금은 짐작해. 아빠는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니까

그래서 어느덧 아빠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흘려듣지 않고 되새겼어.

아빠의 인생 명언집처럼, 나를 위로하려고 했던 마음, 나를 사랑해서 꾸밈없이 해줬던 모든 말은 나를 항상 자극시키고 일깨우게 도와줬거든.     

말이든 행동이든, 옆에 있어도 없어도 나를 언제나 응원해 주고 용기 낼 수 있게 해 줘서, 말로 다 표현 못 하게 고마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말없이 손을 내밀어 준 덕에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어.

아빠의 그 손길은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큰 힘이었어.

늘 내가 먼저라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이런 사랑을 주는 아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     


이제는 아빠가 보낸 사랑과 믿음에 부응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아빠의 사랑이 나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줬는지 보여줄게.

사랑을 담아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 같아. 그러니 이제는 믿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그 믿음이 무엇보다, 누구보다 큰 힘이 될 거야.

앞으로 내 인생도 순탄할 거라는 장담은 못하지만, 어떤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아빠의 가르침과 믿음 속에서 잘 해낼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게.

그리고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 주는 걸로 나는 충분한 행복을 느낄 거야.     


아빠 지금까지 받는 거 없이 무한한 사랑을 줘서, 울타리 안에서 다치지 않게 지켜준 것도 더없이 고마워.

아빠의 사랑에 비하면 작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해 아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딸 올림.     

이전 13화 나를 찾아온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