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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 연 Nov 01. 2024

나를 찾아온 손님

점장님께서 일하다 말고 아 맞다 하며 운을 떼셨다.


“어제 서연 씨 누가 정말 애타게 찾더라고요. 내가 사장인데 여기 사장님 바뀌었냐고 하시면서 너무 속상해하시던데”


“정말요? 왜요?”     


“예전에 왔었는데 너무 친절해서 이천에서 여기까지 또 왔다고 하시면서, 무안할 정도로 애타게 찾으시길래 잠깐 불러야 되나 고민했다니까요?”     


내가 일하면서 겪었던 행복들 중 가장 행복한 일이 일어났다.     

“에이 저 아닌 거 아니에요?”


“서연 씨 맞아요. 키 큰 여자직원이었다고 했어요.”     


내 키는 175cm 정도 됐지만, 그래도 나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매장에 헐레벌떡 들어오신 손님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머 안녕하세요 그만 두신 줄 알고 너무 속상했어요. 월요일에 쉬시는 건가 봐요? 올 때마다 안 보이셔서 그만 두신 건가 했는데 드디어 뵙네요!”     

내가 이토록 찾아 헤매던 손님이 드디어 나를 찾아왔다.


맛이 좋아서, 위치가 가까워서, 분위기가 좋아서가 아닌 오로지 내가 친절해서 다시 오게 된 손님을 찾았다.     

얼굴을 보니 어떤 손님이었는지도 기억이 났다.

옛날에 방문하셔서 빙수를 주문하시고 팥은 많이 달라고 하셨던 손님분들이었는데, 이천에서 여기까지 나 때문에 왔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서 성함이라도 여쭤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별히 각별하게 대해드린 기억도 없었는데, 나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하루종일 기분이 들떴던 나는 이런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아빠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


“아빠 나 때문에 매장에 손님이 다시 왔어. 내가 너무 친절하다고 점장님한테 엄청 극찬하면서 언제 출근하냐고 물어보셨다던데”     


“진짜? 엄청 좋은 일이네.”


아빠는 말은 짧게 했지만, 그 안에 묵직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리광 부리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아빠의 칭찬이 너무 듣고 싶었다.  

   

아빠는 사실 얼마 전부터 엄마랑 같은 입장이 되려고 하시는 것 같다.

요즘 전화를 마칠 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 진지하게 생각해 봐 알겠지?”라고 하셨기에 알고 있었다.

걱정이 섞인 그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내가 조금 더 힘내서 나아가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내년 가을까지 시간을 줄게. 만약에 그때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으면 다 접고 아무 말하지 말고 집으로 와.

당장 그만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년 가을이면 시간 충분한 거 너도 알지?”


엄마는 말했다. 원래 예정대로면 대학 졸업을 했어야 하기에 초조해지셨나 보다.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고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생각이 든다.

나름 오래 일했다고 생각하시는데 내가 목표했던 일에 가까워지려면 먼 얘기인 것 같고, 나이를 점차 먹어가기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정말 놓치고 있는 걸 까봐 아무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이신 거겠지.




이제는 인생이 어렵다고 어리광 피울 수 있는 곳이 사라졌다.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을 더 못 주는 꼴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 진상 얘기나 인생의 조언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기가 어렵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저 인생을 즐기고 싶었던 것뿐인데, 자꾸 이 길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아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정확하다고 증명해내고 싶은 강한 집념이 생겼다.     


나를 찾아온 손님을 보니 내 꿈이 뭐였는지 비로소 환하게 보였다.

성적이 잘 나와 기쁜 마음과는 차원이 다른, 온전한 내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뿌듯한 행복감을 얻었다. 눈을 반짝이며, 이젠 더 이상 돌아가도 이런 행복은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 같은 말을 같은 억양으로 말하더라도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기에, 진상을 만나고 나면 손님이 원하는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매일 밤 생각했다.


매일 기계적으로 내뱉는 말속에 친절과 진심이 없던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말속에 손님이 알아 봐주길 원하는 마음을 조금은 담아, 무엇보다 진심을 한가득 담아 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제야 손님이 찾던 나를 찾았다.


그동안 헤매던 시간들이 비로소 의미를 찾았다. 내 선택과 노력들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껏 겪었던 모든 순간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는 확신이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았다.     

마음을 다 잡은 나는 오랜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본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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