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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고민상담소

나의 마음을 한톨이라도 거짓없이 솔직하게 돌아보고 표현하기

by 이원희 Jan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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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며 나는 인스타그램 친구들을 정리했다. 괜찮을 것(?) 같은 사람들만 남겼다. 

그냥 시시콜콜 온라인의 친구들에게 나의 사생활까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짜장면을 먹던

짬뽕을 먹던 다, 내 마음이니까.

너희들이 미주알고주알 간섭할 이유는 없으니까.


어느 날 이혼 후 건드리지도 않던 페이스북에서 메시지가 왔다. 이전에 비빔밥집을 할 때 알고 지낸 미얀마친구였다. 그 친구는 경북치대에서 나라의 지원을 받아 공부를 하는 친구였는데, 우리 가게 매일 놀러 와 우리가 그 친구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해주면서 친해졌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한복도 입어보고 세배도 하고, 세뱃돈도 주었다. 함께 식사도 하고 미얀마 이야기도 전해 들으며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우리 호주에 있을 때 생각이 난다면서 얼마나 외롭겠냐며 그 친구가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요리해 주었다. 그 친구도 미얀마음식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가져다주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엄마와 그는 금세 손짓발짓을 하며 소통하는 나이와 나라를 뛰어넘는 친구가 되었다.


공부를 마치고 미얀마로 돌아가서 출가를 하게 된 그 친구는 갑자기 내가 생각나서 연락을 한다며 무슨 일이 있는지 이것저것을 물었다.


순간 고민을 했다. 어찌 알고 묻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잘~지내고 있다고 할까?

아님 솔직하게 이혼을 했다고 할까? 갑자기 내가 걱정이 되는 마음이 왜 들었던 것일까?


"이혼하고 엄마와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어."

라고 답변했는데 그런 것 같아 묻는다며 '너희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답변이 왔고, 엄마의 안부를 걱정했다.

사람의 마음은 언어가 다르고 생활이 달라도 같은 마음으로 통하는 점이 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선입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외국인이던. 옷을 이상하게 입었던. 온몸에 문신이 있던. 구멍 난 양말을 신었던. 남자가 치마를 입고와도. 목소리가 크고 무식해 보이더라도!  머릿속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미리 생각하고 대화하지 않는다. 관심을 그런 외적인 것이나 보이는 것으로 갖지 않는다. 다른 이들 역시 나를 보이는 것만으로, 혹은 내상황만을 듣고 색안경 끼고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화를 나눠보고 나와 통~하거나, 마음이 맞는다면 그것만 생각한다. 이상하면 물어보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소통하며 나와 너의 친분관계를 형성한다.  남들이 누구는 그렇고, 그렇다고 카더라~ 하는 말은 잘 귀담아듣지 않는 편이다. 아니 들어도 솔직히 관심이 없어 그런지 기억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다. 그냥 성향이 남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혼은 나에 관한 선입견을 만들었고, 나를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이들이 생겨났으며, 날 예민하게 만들었다. 예의 없이 남에 대한 관심을  나에게 쏟아내는 것이 싫었다. 왜 저들은 나를 걱정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가볍게 물을까? 사람들은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들을 한다.


"아이들은 어쩌고 밖에서 일을 하세요?"  

"애들 양육비는 들어와요?"

"남편 없이 살만해요?"  

"애들 셋을 혼자 키우기 안 힘들어요?"


내 가족이고 내 아이들이다. 걱정을 하면 내가 더 걱정하고 염려할 것이다.

그들의 질문의 의도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그 의미도 파악되지 않는다. 나를 위하는 질문도 아니다.

전 남편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집을 나갔다고 한들, 나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그런 질문들이 무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지 나도 몹시 궁금하다.


"네. 아이들은 많이 컸고, 할머니가 함께 계셔서요."

"네. 그래도 제가 돈을 벌어야죠."

"네. 있어도 불편한 게 남편이었어요."

"네. 둘이 있어도 애셋은 키우기 힘든 건 마찬가지예요."


그냥 그렇게 나는 답을 해놓고 대답한다. 괜찮아라고 대답하지만 괜찮지 않다. 어쩔 때는 많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예의 없는 태도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따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유리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어느 날 예전에 호주에서 알게 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엔 평범하게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으며 시작한 대화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있는데 그녀가 힘들게 이야기를 꺼낸다.


"인스타를 보니 그러신 것 같아서 여쭤봐요. 아이 셋 혼자 키우기 안 힘드세요?"


역시나. 같은 느낌의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순간 들기는 했다. 그들의 가십리가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나의 이혼인가 싶었다. 쓴웃음이 나왔지만 난 이미 만들어 놓았던 답변을 하고,  sns친구 삭제 해야겠다 생각했다.


"네. 둘이 있을 때도 아이 셋은 키우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어요."

"남편이 이혼하자고 해요."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알고 있는 그분은 유책사유를 만들 분은 아니었다. 종교적으로도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고, 늘 성실했고 책임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매사 열정이 가득했던 분이었다. 본인의 부족함을 알고 있기에 늘 영어단어장을 손에 쥐고 외웠다. 호주에서 우리 가족과 한집을 쉐어하면서 두어 달을  같이 살았는데 (한국에서 호주로 처음 오는 경우 집을 구하기 전 같이 집을 쉐어하며 호주적응을 돕는다. 우리는 렌트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 우리 역시 그런 도움을 받았다.) 큰아이 처음 걸을 때 함께 동영상을 찍으며 찐으로 행복해했다. 함께 직장을 구하고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맛집을 다녔다. 바다를 보며 호주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위해주었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함께 웃었다.


깊은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사람은 변하는 것이고, 모든 집안마다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그 부부는 고부간의 갈등. 재정적인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아이 셋을 케어하며 우울증이 왔고, 호주에서의 삶은 많이 고달팠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주르륵 털어놓았다.

나는 이상하리 만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들의 문제점과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나와 오버랩되면서 슬퍼하며 공감했고, 마음이 아프면서도 현실적으로 생각을 했다.


그들은 연로한 시어머니를 호주로 모시는 것이 영주권의 첫 목표였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생활비가 더 많이 들어가니, 애셋을 맡기고 부부가 맞벌이로 일을 해야 했다. 말도 안 통하고 차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는 먼 타국땅에서 육아우울증이 시어머니에게 왔다. 영주비자는 확실하지 않고, 아이들을 케어하는 과정에서의 마찰까지 오다 보니 고성이 오가는 싸움이 시작되었고, 골이 깊어진 것이 벌써 6개월이 넘어간다고 했다. 그냥 이야기만 들었지만 나는 지치는 것 같았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지쳤을까 싶었다.


"난 더 이상 이기적인 너를 볼 수 없다. 어머니를 절대 버릴 수 없지만 너는 버릴 수 있다. 아이 셋을 원하면 데리고 가고. 못 키우겠으면 내가 키운다. 호주에서 살 수 있는 비자가 확정될 때까지만 법적부부를 유지하되, 지금부터 우린 남남이다"라고 얘기하고 어머니와 남편이 사라진 것이 3일째 되었다고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일주일 되는 날 짐을 정리하고 나가던지, 아니면 본인이 어머니와 나가겠다고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덜덜 떨며 이야기했다. 3일 동안 주야장천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눈물이 나는 이유가 이혼이 무서운 건지, 아이 셋을 키우는 게 무서운 건지, 남편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배신감마저 든다고 훌쩍거렸다. 결혼해서 함께 사는 건 와이프이지 엄마가 아니라고 했던 그가 고부갈등이 생기자 본인을 버린다는 표현을 하고, 아이들은 어찌하라고 무작정 집을 나간 남편을 이해할 수 없고 화가 난다며 감정의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예전 불안정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무서워서 덜덜 떨었던 기억도 났다.


부부 혹은 연인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행동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그것이 간음이 아니더라도 상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상황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괴롭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다. 여자는 사랑받는 것으로, 남자는 존중받는 것으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해요'라는 말을 가족, 친인척, 지인들을 앞에서 결혼선서를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 한마디로 그 선서를 저버려야 한다. 결혼은 둘만의 인생만 엮이는 것이 아니다. 이혼은 온 가족들의 삶까지 흔들어 놓는다. 물론 본인들이 제일 힘들겠지만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더 깊고 신중하게 결혼, 이혼을 선택해야 한다. 결혼식의 사랑의 맹새, 결혼의 서약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모든 것이 소중하고 진중히 치러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하나하나의 행위들을 나는 얼마나 사소하고 깊이 없이 생각했었는지 생각났다. 결혼과 이혼은 단순히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닌, 모든 관계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직접 겪으며 배웠다.


그녀는 이민사회는 너무 좁으니 어디 편하게 이야기할 곳도 없고. 한국에 있는 친구나 부모님께도 멀리 있어 걱정 끼칠까 얘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애셋을 키우며 혼자된 내가 사진으로는 너무 좋아 보였다고 한다. sns의 최대 단점이다. 보이는 것만 멋져 보이는 것. 아무튼 어찌 그리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며 이혼 후 본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또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었던 것 같다.


"이혼 이후의 삶을 걱정하지 말고.

지금 본인이 원하는 게 진심으로 무엇인지 고민하세요."


벌어지지 않은 일 따위에 걱정이 시작되면 지금 내가 처해진 상황이 불안하고 불만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남 탓을 하게 된다. 모든 일들이 그렇다.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솔직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면 내가 양보해야할부분. 섭섭한 마음. 미안했던 일.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등이 정리가 된다.


이혼을 한다, 안 한다라는 것이 내 삶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아니다. 오롯이 나에게 초점이 맞춰서 생각을 해야 한다. 현재 내가 해야 할 일들... 즉 아이 셋을 케어하고. 일을 하면서. 주말이면 아이들과 교회를 가고, 본인이 하던 일을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오는 주변의 시선과 소문 그리고 나를 위한다는 이야기에 눈. 귀를 닫고 평소와 다름없이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주변에 휘둘리거나, 이혼을 안 하고 싶어서 감정에 휩쓸리거나, 본인이 불안정하면 아이들도 불안하고 울고 불고 떼쓰고 미안한 과정들이 반복된다. 도돌이표 되는 힘든 상황으로 갈필을 못 잡고 계속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종국에는 이혼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지옥 같은 어두운 늪에서 못 빠져나오게 된다.


나는 "나"를 기준으로 이야기했다. 그녀는 똑 부러지면서 해답 같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감정을, 아이들을 향했었던 나의 미안했던 감정들,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본인의 마음 한 톨이라도 속이지 않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는 버리라고 했다. 이혼을 하던 안 하던 솔직한 감정을 쏟아내야 그들도 똑같이 솔직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미안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지고,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오해가 풀릴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해결이 안 된다면 이혼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이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난 그들의 이혼여부는 관심도 없었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 나에게 전달된 것처럼 가족들과도 이야기를 하면 이혼은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두 달인지 석 달 쯤인지 시간이 지나고 메시지가 왔다.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며 서로 많이 울었다고. 처음엔 이야기를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고, 시어머니와 남편은 강경했고 끝까지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한 달 정도 아이들과는 평소와 똑같이 지내려고 노력하며 지냈다고 한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살이 좀 빠졌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면서 밥 잘 먹으며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고 한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시어머니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오해를 다행히도 풀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아이들을 아빠 없는 자식으로 크는 게 좋겠냐 (남편이 어릴 적 일찍 아버지가 연로하셔 돌아가셨고 아버지 정을 늘 그리워했다) 따져 물으며 각자의 약점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했었는지 모르겠다며 서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생겼고, 오히려 지금은 더 많이 애틋해진 것 같다고 했다. 감사하다며 잘 지내고 있다가 한국에 오면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여유를 되찾은 순간이 오지 않았을까, 그것이 돈이라는 경제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신뢰일 수도 있겠다. 불화로 인해 서로를 향한 화살을 쏘았다. 마음을 진정시키서 화살은 미안한 마음이 되었고, 미안한 마음이 고마운 마음과 이해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부부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난 아주 짧게 답변을 보냈다. 솔직히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뒤로 나도 그들도 서로 안부를 묻지도 않았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를 보면 아마도 고마운 마음보다는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고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나고 부끄럽고 숨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혼을 상담해 준 건지, 나를 스스로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 역시도 냉정하게 나를 돌아보며 정리해 보았다.


나도 이혼할 때 힘들었지만, 혹여나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똑같이 이야기해 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무릎을 탁! 치며 깨닫는 시간이 오기도 할 것이고, 쓸쓸하고 외롭기도 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는 것. 그렇게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소리를 듣다 보면 후회하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없어지고 괜찮아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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