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서류가 정리될 즈음 자존감이 지하 어디쯤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 나는, 매일 취해있었다.
대인기피증처럼 모든 사람들이 싫었고, 미웠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서 그랬을까. 독하게 마음먹었던 나는 어디 가고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갑자기 화가 밀려오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이 답답하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잠도 잘 못 잤다. 밤새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어도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나기도 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48시간을 깨어있기도 했었다.
이혼을 하면서 상호도 정리했어야 했다. 하필 사이좋은 부부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기에 더 이상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 상호로 진행했던 박람회를 정리하며 하늘이 무너지게 울었다. 함께했던 동생도 울고, 나도 울고 하염없이 울었다.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그때 기억이 뜨문뜨문 없다. 전국을 다니며 고생했던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이제 좀 자리 잡고 회사를 조직적으로 운영해 보려는 찰나에 이혼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려서, 내 야망이 꺾이는 것 같아서 그랬을까? 앞으로는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서 그랬을까?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것들이 복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눈이 팅팅부어서,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소송과 이혼을 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체력을 모두 소진했다. 살이 계속 빠지고 있었다. 입맛도 없어서 잘 먹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엄마가 밖에 나가 놀기라도 하라며 건네신 말이다. '생각 없이 그냥 좀 놀아. 좋아하는 여행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애들 걱정은 하지 말고.' 친구들을 만나도 누굴 만나도 그냥 그랬다.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혼을 하기를 꼭 기다렸던 것처럼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계속 접근을 해왔다. 직원으로 일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아이 셋을 혼자 어떻게 키우냐 도와주겠다 접근하기도 했다. 같이 동업을 하자고 하기도 했으며, 여자친구하자고 접근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유리장벽.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암묵적인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을 말한다.
나는 이혼을 하고 나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혔고, 겪어보지 못한 차별과 편견 앞에 놓였었다
아니라고 말들은 했지만... 시공을 가서도 여자혼자 이일을 한다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남편 없어진 여자대표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 같았다. 나를 중요한 영업에서나 일에서 빼기도 했고, 사무를 보는 보조로 생각하고 데모도로 날 이용하려고 했다.
내가 여자라서 자기 남편과 함께 일하는 게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식사하셨냐로 시작하는 나의 업무 메시지를 보고 남의 남편에게 관심 끄라는 문자를 받은 적도 있다.
난 이혼을 한 것뿐이었는데 '혼자된 여자'는 남자들이 많은 업종에서 핸디캡이 많았다.
이혼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결단코 없다.
그런 영양가 없는 남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유리장벽이 느껴질 때면 가슴을 친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 머릿속까지 뜯어서 고칠 수가 없으니, 내가 뛰어넘는 것만이 살아갈 길인가 싶었다. 이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사회에서 이혼가정의 엄마들의 홀로서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함께 일을 하게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으쌰으쌰 일을 해보고자 열심히 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앞뒤 안 따지고 믿고만 있었는데 의견을 주고받다가 언성이 높아졌고,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꼬박 한 달 동안 몸도 마음도 지쳐서 많이 아팠던 것 같다.
이혼하고, 다시 시작한 일이 어그러지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다 믿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 생겼다.
일이 어그러지고 창고에서 줄눈자재와 짐을 정리하며 차에 싣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무거운 짐을 정리하고 있는 나를 보고 어르신이 나오셔서 음료수 2개를 주셨다. 괜찮다고 하는 나에게 한사코 음료수를 쥐어주시며 '안 먹을 거면 다른 데 가서 친구라도 줘'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났다.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어르신들은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만 보아도 힘든지 안 힘든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음료수를 받아 가지고 오면서 생각했다.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날 위로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우리 엄마도 내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딸이 말하지 않아도 다시 홀로서기를 위한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어른들은 다 겪어보고 지나간 일들일 테니까...
그 산타할아버지 노래가 이런 뜻이었을까?
빛나는 유리가면을 쓰고 나의 서글플 마음은 숨길 수 있는 유리가면을 쓰자고 다짐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해야 한다고...
이혼 전에는 혼자서 일한 적이 없었기에 솔직히 두려웠을 수도 있다.
무턱대고 믿고 따라가서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섣부르게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급하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자 생각했다. 그 상처 또한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미리 예측하고 방어하는 기질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상처가 아물면서 딱지를 만들었고, 딱지가 떨어져 나갈 때쯤 또 나는 상처를 받았다.
이제는 흉터만 봐도 욱신거린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이런 거 저런 거 남들이 나에 대해서 몰라도 된다. 아니 몰라줘도 된다.
조금 손해 보는 듯 악착같이 살자. 괜찮다고 생각했다. 원래 힘든 거 잘 버티니까, 멘털싸움은 내가 지는 싸움은 아니니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하니까.
유리가면은 깨질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