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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자책: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그 시절 내가 원했던 말은

by 은방울 꽃

사춘기 시절 엄마와 다투고 나면 가슴을 치며 펑펑 울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돌변했다.'라고 표현했다.

어른들은 평소에 차분하고 조용했던 내가 한 번씩 화를 내면 그저 치기 어린 순간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때의 나는 억울한 마음보다도 답답한 마음에 울분이 쌓이곤 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아무도 내가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 물어봐주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이 지나 빠르게 원래의 딸로 돌아오길 바랐을 뿐.


그 시절 어른들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나에게 적용했다. 그저 내 분노가 알아서 가라앉기를 기다리셨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먼저 화해를 거는 쪽은 나였다.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해야 했고 없는 잘못은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다 내 잘못이야.'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마음이 지쳐있던 그 순간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속에 분노를 꾹꾹 담아놓게 되었다. 정말 쉬운 방법이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고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돼.'라고 생각하면 다 내 잘못이 되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분노'라는 감정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다루기 어려운 마음이 되었다.

장에서 선을 넘고 남을 깎아내리는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처음에는 분노가 올라오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의견도 제대로 못 낸 다 내 잘못이야.', '조금 더 명확하게 말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참았다면?'

자책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내 감정을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 내 잘못이니 굳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이유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To. 이불속에 숨어 자는 척 울곤 했던 어린 나에게

어른이 되어서도 나와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웠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특히 나와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

우리는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나의 가족도 마찬가지야.

그렇기에 나는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늘 나를 낮추고 깎아내리며 살았던 것 같아.


어린 나야.

분노라는 감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야. 그 이유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

너의 생각과 사람들에 대한 너의 바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야.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

어른이 된 나도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했어.


그 실망과 좌절은 결코 어린 너의 잘못만은 아니야.

누군가 너에게 너만 고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결코 돌아보지 않는 그 사람의 미래를 안타깝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런 경솔한 사람들이 있더라.


너의 감정은 누구보다도 소중해,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말이야.

너를 화나게 만든 그 사람들을 마음껏 미워해봤으면 좋겠어. 그게 가족이라도 말이야.

용서는 그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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