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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

자꾸만 한쪽으로 마음이 쏠릴 때

by 은방울 꽃

혹시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라면 나만큼 화가 날까? 혹시 내가 예민한 걸까?


'예민함' 양날의 검과 같은 단어다.

남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섬세하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될 수도 있다.

가끔은 무던하며 곰 같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던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을 머릿속에 자주 떠올리며 따라 하려 애썼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면 나의 마음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 상황을 보려 했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온다.

모든 식당들이 5점짜리 리뷰와 1점짜리 리뷰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사람을 누구는 좋다고 말할 수도, 싫다고 말할 수도 있다.


상황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감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내 모습이 멋져 보이지 않아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인간관계에서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분노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간 해소되지 않은 분노들과 공허함, 억울함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까지 흐려지게 만들었다.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화, 짜증, 슬픔) 들은 미성숙하고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 자신을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하는 모기 같은 상황들 뒤에는 코끼리가 존재한다.

주변의 무던한 사람을 찾아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자신을 검열하던 나에게는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나는 왜 모기 같은 상황에 코끼리만큼 화가 날까? 나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찾아가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최근 태교를 위해 집 주변 문화센터를 찾아갔다.

바느질에 큰 소질은 없지만 아이의 옷에 자수를 놔주는 내 모습이 멋있을 것 같았다.

자수반에 가보니 수강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기존 사람들 틈에 나라는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설렘과 긴장으로 수업시간이 끝날 무렵에는 조금씩 말을 하게 되어 산전휴직 중인 나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리게 되었다.


그러자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완전 바보네 바보~ 아이가 나오면 휴직을 써야지, 벌써 휴직을 해? 일하는 게 산모한테 오히려 좋은 건데"

곧 마음속에는 변호사와 판사들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10초! 10초짜리 공방이 펼쳐진 것이다.

'거 처음 본 사람한테 바보라니 ?' 화가 잔뜩 난 변호사가 이야기하면

'나 스스로 떳떳하면 되지,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보자'라며 차분한 변호사가 진정을 시킨다.


평화주의자 판사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받아넘긴다.

정답은 모르겠다.

10대, 20대 어느덧 30대를 앞두고 있는 아직까지도 갈등을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도 하나, 나에게서 쏟아지는 감정들을 꾹 누르거나 회피하고 싶지 않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나라서 겪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

나와 같은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감정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다 보면 마음을 지탱하는 뿌리가 조금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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