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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삶에 나침반이 필요할때

우리 삶의 작은 도깨비 불

by 어떤 사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짧은 이 문장은 책 제목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처음 듣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삶 속에서 죽음을 자주 잊기 때문일까.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예상 밖이고, 그래서 너무 슬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선물이 된다.
끝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얼마전 생각지도 못한 장례식장을 가게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동료의 남편의 장례식이었다..

한없이 강하고 한없이 선하고 능력도 출중했던 그녀는

오래 사귀고 결혼한 남편과 사이도 무척 좋았다.

서로가 딩크로 약속하고 결혼을 하였기에

시간이 흘러 아이를 갖고 싶음에도

서로를 배려하느라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둘 다 사실은 이제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는 걸 알고는 기쁜 마음으로

사랑스런 아이까지 얻었다..


불과 몇달전의 일이다.

어렵게 탄생한 생명이 너무 안쓰러워지는

탄생과 죽음이 너무 가깝게 맞닿아버린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오래전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더 감정이 출렁였다.


이십대 후반에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돌아가셨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깨지 못하고 심정지로 그렇게


원래도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집에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이상한 이야기나 하는게 아버지 생활의 전부였으니

가족들과 사이가 좋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마지막 그 전날밤 아버지와의 기억은

밤 10시경 집에 들어오는 나에게

"일찍 일찍 다녀라" 라고 말했던 것이 마지막 말이었고

나는.. 대답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무원이 되자 공무원 대출을 받아서

아버지 새차 좀 뽑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던 아버지,

그를 무시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커지기만 한 상태였다.


한시간 반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하는 딸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을까? 답답하고 한심하게만 느껴졌던 기억.


그와의 마지막 주말의 기억은..

주말에 친구들과 부산여행을 다녀와 무화과를 사서 의자에

올려 두었는데 나와 이야기를 하겠다며

그 의자에 앉는 바람에 무화과가 다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온갖 짜증을 다 부리며 대체 왜 이러냐고

소리지르며 싸웠던 것,

어릴때부터 그렇게나 좋아했던 무화과를

잘 먹지 않게 된것도 그때 이후였던것 같다.


그까짓 무화과가 뭐라고 그렇게나 짜증을 부렸을까

새차 한번 뽑아드릴 걸, 운전을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그래서 한시간 반 거리의 내 출근길도 곧잘

데려다 주시기도 하셨는데..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는 당장 회한과 슬픔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시간도 벌써 15년이 넘어가고

지금은 웃으며 엄마와 아빠 이야기를 곧잘 하곤 하는데


살아생전 당뇨도 있으셨는데도 초코파이를 너무 좋아해서

초코파이 한박스도 앉은 자리에서 바로 해치웠다는

이야기가 나는 특히 좋았다.


비록 확실히 몸에는 안좋아서 당뇨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지만

어릴때부터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했던 아버지는

특히 간식에 대한 욕구가 많으셨나보다라고 해석했다.

알콜중독에 걸린것도 나 혼자의 생각으로는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탓이 클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차피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삶 속에서

원하는 초코파이라도 한박스 넘게 뚝딱 드셨다는 이야기는

그 순간에는 만족하고 행복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내일의 엔딩』속 자경의 아버지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의식 없이 긴 세월을 지내며
자경은 오랜 간병과 경제적 고통을 감내한다.


간병비를 마련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녀는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낸다.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단, 꾹 눌러가며 일상을 견딘다.
그 모습은 때론 회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버티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 결과는 사채까지 끌어 쓴 경제적 상황,

그녀가 누릴수 있는 최대의 사치는 50만원짜리

명품 스카프가 다였고

절대 누릴수 없는 사치는 남자친구 '응현'과의 미래였다.


소설의 끝에서 자경은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부터 내집이었던 집을, 삶의 일상마저도.
그 모든 상실을 만나자 그녀는 오히려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남자친구 ‘응현’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가장 어두운 웅덩이 속에서 도깨비불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끝이 보이는 유한한 삶이라면 한번쯤은

내가 하고싶은대로 내 욕심대로 뭐든 해볼까..?

그저 작은 빛을 따라 가다보면 삶을 잘 마칠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어두워도,
아무리 깊은 절망의 웅덩이에 빠지더라도
한 점의 빛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빛을 따라 걸어갈 수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슬픔과 상실을 겪고있는 이들에게도
오늘의 책처방에서 작은 도깨비불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사서의 오늘의 책처방 ✅
『내일의 엔딩』
: 깊은 어둠을 견디며 작은 도깨비불을 찾아가는 이야기.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삶의유한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야, 진짜 중요한 것들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진정한 행복과 평화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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